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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우리 모두의 3라운드를 응원하는 ‘카운트’
88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 실제 경험담 인생 담아
쓰러지고 실패해도 인생의 ‘카운트’ 말하는 주제…‘아직 경기 안 끝났다’
2023-02-20 07:01:38 2023-02-20 07:01:38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공평하다’란 기준에서 ‘복싱’만큼 균형감을 가진 스포츠가 있을까 싶다. 우선 상대 선수와 나 뿐입니다. 모두 두 팔로만 경기를 합니다. 치고 받고, 받고 치고. 룰도 엄격합니다. 그 룰 안에서만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당연히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이 경기를 주관하고 판정을 내립니다. 링이 있습니다. 사각의 링 안에서만 상대를 치고 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경기의 매력. 상대의 주먹에 나가 떨어지고 쓰려 진다 해도 10초의 시간을 준다는 겁니다. 그 시간 동안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전의를 다시 끌어 올리면 됩니다. 가만히 살펴보고 들여다 보면 복싱이란 스포츠, 의외로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모양새 입니다. 쓰러지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단 것. 기 회, ‘카운트’입니다. 영화 ‘카운트’는 그 기회에 대한 얘기입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존재하고 또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정당당하게 의미를 다하는 기회. 그 기회를 누구는 알면서도 지나치고 누구는 모르고 지나가며 또 누군가는 외면합니다. ‘카운트’는 기회를 외면해 온 한 남자 그리고 그 기회가 외면해 버린 또 다른 한 남자. 두 남자가 만나 만들어 내는 ‘2라운드’를 그립니다. 거창한 의미의 ‘인생 2라운드’가 아닌 그저 단지 ‘2라운드’입니다. 우린 모두 뻔한 걸 외면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저 대면할 용기가 없었기에 그래왔을 뿐입니다. ‘카운트’가 그저 단지 ‘2라운드’를 그리고 있단 건 역설적으로 이 간결한 의미의 중요성을 잊고 지내는 모든 이들의 좌절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당신의 좌절이 2라운드로 가는 길목의 당연한 문턱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2라운드가 ‘인생의 또 다른 삶’이 아닌 그저 그대로 흘러온 삶의 ‘넥스트’란 뜻의 ‘2라운드’임을 전합니다. ‘카운트’는 그 제목 자체로 ‘넥스트’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얘기는 잘 알려진 대로 88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개최국이란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최종 종합순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불가분하게 편파 판정 논란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바로 박시헌 선수였습니다. 영화는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시헌(진선규)은 자신의 고향, 경남 진해 한 고등학교 학생주임 선생으로 근무 중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미친개’라 불리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서울올림픽 이후 힘들어 하는 시헌을 이 학교로 불러들인 교장 선생님은 과거 시헌의 은사입니다.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어느 날 시헌은 교장 선생님과 함께 지역 내 고교 복싱 대회에 참관합니다. 전직 금메달리스트로서 대회 VIP로 초대돼 경기를 참관하던 시헌의 눈에 승부조작이 걸려듭니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힘 좀 쓰는 아버지를 둔 학생의 우승을 위해 희생양이 되는 윤우(성유빈)를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윤우는 해당 코치가 수건을 던져 다 잡은 경기에서 기권패를 당합니다. 윤우의 억울함이 고스란히 시헌을 때립니다. 10년 전 자신이 겪었고, 지금까지 겪는 그 감정이 되살아 납니다.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시헌은 10년 동안 쳐다 보기도 싫던 복싱 글러브를 다시 잡기로 합니다. 아내 일선(오나라)은 극구 반대입니다. 복싱이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남편이 그 복싱으로 인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혹시 해코지가 있을까 싶어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혼인 신고만 한 채 살고 있습니다. 신혼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지옥 같던 시간을 옆에서 고스란히 바라보며 그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딘 아내입니다. 그런 고통의 중심에 복싱이 있었는데 그 복싱을 다시 한답니다.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시헌은 윤우에게서 자신을 봤고, 자신과 같은 선수가 또 나올 것이란 생각에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더 이상 도망가기 싫었습니다. 극구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시켰습니다. 함께 사는 동안 꽁꽁 숨겨둔 연금 통장. 학교 복싱부 기금으로 쓰겠답니다. 놀랍게도 아내는 담담하게 승낙합니다. ‘그 돈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았다’고 말하며. 남편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남편이 얼마나 복싱을 사랑했는지 알았기에 그토록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또 다시 상처 받는 남편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었기에.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이제 시작입니다. 시헌은 윤우 그리고 양아치 문턱에 선 자칭 미래의 챔피언 환주(장동주) 그리고 빵 셔틀 왕따 복안(김민호) 여기에 학교 골치거리 3인방까지. 시헌은 이들과 함께 자신의 진짜 금메달을 위해 모두의 2라운드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카운트’는 창작 극화가 중심이지만 그 배경에는 실제 박시헌 선수 얘기가 밑바탕을 이룹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실제 승부 조작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금메달이었습니다. 극중 이름도 박시헌인 진선규는 영화에서 ‘차라리 은메달이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며 낙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장면, 실제 박시헌 선수 심정이었답니다. 물론 후에 ‘당시 승부 조작은 없었다’는 공식 입장이 세계 복싱 기구를 통해 나온 바 있습니다. 당시 승부 조작이 실제 있었다 하더라도 그 문제가 박시헌 선수 본인 의지가 아니었다는 게 더 중요합니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 없이 상처뿐인 영광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한 한 남자의 심리가 어둡고 아프게 그려질 법합니다. 하지만 ‘카운트’는 결코 그런 방식을 선택 하진 않습니다.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카운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싱의 3분 1라운드를 담아 내듯 빠른 호흡을 통해 흐름을 이끌어 갑니다. 매 순간을 담은 컷과 씬(SCENE)과 시퀀스가 복싱의 라운드처럼 느껴집니다. 상대의 어퍼컷에 쓰러졌다 낙담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카운트’는 쓰러진 시헌에게 매 순간 10초의 카운트를 세 왔습니다. 그 카운트에 시헌과 윤우 그리고 나머지 복싱 부원들 모두가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고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그 다음을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헌은 88올림픽 금메달 이후 다운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우를 만나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카운트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윤우를 만난 뒤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에 돌입했습니다. 아직 상대와 다시 경기를 재개할 ‘파이트’의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윤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승부 조작의 희생양으로만 살아온 자신이 꼴 보기 싫었습니다. 복싱이 싫어 졌습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 했습니다. 이렇게 끝내긴 싫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한 번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헌과 함께 ‘넥스트’, 즉 2라운드를 준비한 것입니다. 모든 컷과 씬과 시퀀스가 이런 전제 조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카운트’는 그 자체가 복싱 경기의 1라운드입니다. 아직 1라운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2라운드에 돌입하기 직전입니다.
 
영화 '카운트' 스틸. 사진=CJ ENM
 
‘카운트’는 스포츠 영화 정석 코스를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공식 안에서 안전하게 달립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 하나, 앞서 언급한 그것입니다. 아마추어 복싱 경기는 3분 3라운드 경기입니다. 1라운드는 영화 시작 전 사실상 마무리가 됐습니다. 영화 시작부터는 2라운드까지의 준비 과정입니다. 그리고 영화 막바지 2라운드에 돌입합니다. 아직 이 영화 속 경기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3라운드가 남았습니다. 영화 에필로그에 흘러나오는 실제 모델 ‘박시헌 총감독’의 모습. 박시헌 선수는 그 3라운드를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3라운드, 이제 윤우의 차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차례이기도 합니다. 아마 멋진 경기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카운트’가 윤우와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파이팅!!!. 2월 22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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