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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시은 “어딘가에서 버티는 ‘다음 소희’를 응원하며”
“시나리오 읽은 뒤 이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 든 영화”
“힘든 순간 혼자라고 느꼈을 소희 심정, 이해 돼서 눈물 나려고”
2023-02-13 07:01:05 2023-02-13 07:01: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배우 김시은의 나이에 놀랐습니다. 그는 이번 영화 다음 소희에서 고등학교 예비 졸업생 소희를 연기했습니다. 예비 졸업생이니 18세입니다. 물론 극중 나이이지만 어색함이 단 1도 없었습니다. 겁을 먹은 듯한 눈빛 그리고 약간 움츠린 어깨 라인, 여기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가 뭐라해도 당연하게 고교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분위기까지. ‘다음 소희에서 김시은은 그냥 그 자체로 극중 소희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뷰에 앞서 너무 놀랐습니다. 1999년생 올해 25세입니다. 20대 중반입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어려 보인다는 말은 종종 듣는다고 수줍어 했습니다. 그 모습에 얼핏 영화 속 소희가 취업이 확정된 뒤 활짝 웃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그리고 이내 좀 슬퍼졌습니다. 이 영화, 실화가 모티브입니다. 너무도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김시은은 실제 자신보다도 나이가 어린, 한 참 어린 여동생뻘 극중 소희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얘기합니다. ‘저 역시 소희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라고.
 
배우 김시은.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연기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김시은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다음 소희출연에 부담을 느끼고 임했단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의례적으로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부담이 있었다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고 체감적으로 온전하게 느끼는 부담입니다. 그는 이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 읽은 뒤에도 실화였단 걸 몰랐답니다. 이어 형식도 너무 독특했는데 그게 사실 부담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네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 이 영화가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설명이 안될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실화란 감독님 말을 듣고 진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났을까 싶었죠. 특히 형식이 너무 부담이었어요. 1부와 2부로 나눠지는 형식인데, 그 중에 처음부터 중반까지의 1부를 저 혼자 거의 책임을 져야 했어요. ‘감독님과 두나 선배님에게 폐 끼치면 안된다란 생각뿐이었죠.”
 
배우 김시은.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다음 소희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고생이 콜센터에 취업한 뒤 과도한 업무와 언어 성폭력에 시달리면서 그 후유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실화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입니다. 김시은은 극중 주인공 여고생을 연기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실제 사건 속 여고생처럼 콜센터로 매일 매일 출퇴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결국 촬영 중반 이후부턴 체력적인 문제가 아닌 실제로 체감적으로 심적 고통이 너무 크게 밀려와 당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가 체력적으로 그렇게 힘이 부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촬영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실제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 되게 무딘 편이에요. 한 번은 전주 촬영장으로 내려가던 중 공황장애처럼 순간 숨이 턱 막혀서 너무 놀랐어요. 잠시 쉬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그때 감정들을 써 내려가면서 조절을 했던 적도 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 하니 그걸 감독님이 눈치 채고 평소에도 소희로 살 필요 없다. 촬영장에서만 소희가 되면 된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진짜 그때 눈물 참느라(웃음).”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실제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김시은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성격과 분위기는 너무 밝고 당차고 힘이 넘쳤습니다. 극중 소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 장면, 그러니깐 취업이 확정됐다고 담임 선생님이 통보를 할 때 활짝 웃는 모습은 영락 없는 여고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뜻하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소희는 서서히 어두워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궁금했습니다. 프로 배우이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소희와 닮은 교집합을 찾아내 끄집어 내야 하는 과정이.
 
초반의 적극적인 모습, 그런 건 저와 너무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제가 가장은 아니지만 저도 돈을 벌어야 저희 집 살림도 좀 더 좋아지고 사정도 괜찮아 지고(웃음). 그런 건 극중 소희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너무 이해가 됐어요. 전 당연하지만 지금도 매 순간 배우로서 더 좋은 모습으로 인정 받고 싶어요. 하지만 제 노력이 부족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순간도 많이 오고. 그런 게 소희의 모습에도 많이 투영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그의 설명처럼 사실 영화 속 소희는 너무 강합니다. 상당히 강한 인물입니다. 그런 소희가 서서히 말라갑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가득 달린 멋진 나무가 조금씩 힘을 잃어가면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듯이. 소희는 그렇게 말라 가기 시작합니다. 버텨 보려고 하는 듯한 모습도 보입니다. 말했지만 소희는 정말 강한 내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소희가 그렇게 버티던 끊을 놔 버리는 순간에선 김시은도 어쩔 수 없었답니다. 너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며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소희는 약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소희가 죽은 뒤 유진(배두나) 형사에게 소희가 당차던 아이라고 설명하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요. 그런 소희가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말해 봤자 뭐가 달라 지겠나 싶었을까. 전임 팀장의 죽음 그리고 새 팀장과의 불화, 사실 그 불화가 도화선이었던 거 같아요. 그 불화에 주변 동료들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방관하고 있고. 그 속에서 혼자라고 느꼈을 소희의 심정이 너무 힘들고 외롭고. 눈물 날려고 해요. 사실 그들 모두가 다음 소희일 텐데.”
 
배우 김시은.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김시은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 영화에는 빌런, 즉 나쁜 사람이 없던 것 같다는 말에 일부분 수긍했습니다. 극중 소희와 수당 문제로 불화를 겪는 신임 팀장조차 사실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센터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을 넘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소희를 제외한 모든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야 소희의 죽음이 억울 해지고 그 억울함이 해소되는 것일까라고.
 
사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지금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영화에는 빌런이 없어요. 모두가 그냥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에요. 그 최선이 최선이 아니게 됐던 게 문제잖아요. 그 문제가 왜 문제가 됐을까. 결국 시스템의 문제였죠. 그 시스템을 누가 만든 걸까. 그건 어른들이 만든 거잖아요. 그 어른에는 지금의 저도 포함이 되고. 우리 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배우 김시은.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김시은에게 다음의 소희가 또 나올까라고 물었습니다. 너무 끔찍한 질문이고 또 이 영화를 소화한 여배우에겐 가혹한 질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시은은 그저 묵묵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분명 또 나올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걸 막아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변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변하기 위해선 각자가 변해야 한다고.
 
그 어린 소희가 죽었는데, 누구 한 명 책임을 지지 않아요. 너무 화가 났어요. 근데 만약 내가 저 영화 속 어른이었다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그 질문에는 저도 확신을 갖고 난 안 그럴 자신 있다라고 말 못하겠더라고요. 개인 혼자가 마음 먹는다고 바뀌어지는 현실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버티는 소희가 있을 거에요. 제발 힘내고 또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우리 모두가 변화의 시작이 됐으면 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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