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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다음 소희’ 배두나 “어린 학생 죽었는데 왜 책임을 안 져요?”
“감독 ‘배두나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어둡게’ 요구…죽은 소희 심정 공감”
“‘다음’ 소희는 분명 다시 나올 것, 하지만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기대”
2023-02-09 07:10:37 2023-02-09 09:12:2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배두나의 연기, 그 연기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일단 눈에 띄게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배두나 자체가 연기력을 앞세우는 스타일의 배우는 아닌 것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배우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의 장점은. 아마도 스며 들게 하는 압박감일 듯 합니다. 이건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의 연기를 보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연기에 빠져드는 것은 아닙니다. ‘스며들게 하는 압박감은 배우 본인이 연기를 하면서 작품을 보는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반드시 빠져 들어야 한다란 일종의 강요입니다. 결코 나쁜 건 아닙니다. 때에 따라선 이런 강요, 분명 필요하다 확신합니다. 배두나의 강요가 다른 배우의 그것과 전혀 다른 건 사실 딱 하나입니다. 배두나의 연기적 강요는 윽박지름이 없이 관객 스스로가 그 사건과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서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게 밀어 넣는 과정일 겁니다. 단순하게는 밀어 넣는이란 표현 때문에 강요라고 적어 놓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등을 떠밀 듯 밀어 넣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배두나의 떠밀림에 힘을 쓰고 버티는 관객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입니다. 그의 떠미는 힘에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절정이 다음 소희에 담겨 있습니다.
 
배두나.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다음 소희는 굉장히 독특한 구성입니다. 배두나와 도희야를 함께 한 정주리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138분이란 적지 않은 러닝 타임입니다. 이 가운데 배두나는 정확하게 앞에서부터 중간 이후에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중간을 기점으로 앞 부분은 여고생 소희’(김시은)에 대한 얘기, 그리고 중간 이후에는 소희의 죽음을 수사해 나가는 형사 유진에 대한 얘기입니다. 배두나가 맡은 배역은 중반 이후 등장하는 유진입니다.
 
그런 구성이 너무 좋았어요. 여러 좋은 면이 있었지만 딱 하나를 꼽자면 1부와 2부로 나뉜 구성이었어요. 유진은 극중에서 철저하게 소희의 죽음만을 말하는 존재였어요. 그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를 수사하면서 관객들에게 그 이유를 감정으로 설명해 나가는. 소희를 향한 우리 모두의 감정을 유진이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상당히 객관적이면서도 또 한 편으론 아주 주관적인 인물이기도 했죠.”
 
배두나.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도대체 유진은 왜 소희의 죽음에 그토록 집착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극중 유진은 아픈 어머니를 오랫동안 간병하고 복귀한 형사입니다. 유진에게 소희의 사건이 배당된 것은 조사를 해보나 마나 한자살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편안하게 사건 하나 처리하면서 감도 좀 끌어올리고. 현장 느낌도 살리는. 그런 용도로 소희의 자살 사건을 배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진은 파고 들었습니다. 집착했습니다.
 
일단 감독님이 유진에 대해 설명해 준 건 딱 하나였어요. ‘그동안 배두나가 연기한 인물 가운데 가장 어두웠으면 한다. 아픈 어머니를 오랫동안 간병했고, 그리고 어머니를 보내 드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한 형사. 그런데 그 형사가 콜센터에 가서 죽은 여고생의 자리를 본 순간부터 사건에 집착한다면. 제 생각에는 아마도 유진 역시 어린 시절 소희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나 싶어요. 정서적 공감이 소희의 죽음으로 유진을 끌어 들인 것이 아닌가 싶었죠.”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는 직관적입니다. 오프닝부터 중간까지는 소희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린 소희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선택이 왜 일어났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 엔딩까지는 유진의 얘기입니다.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쫓아가면서 우리 사회의 폭력성 그러니깐 무관심 그리고 책임 회피 등 기성 세대 그리고 어른이라 불리는 모든 우리들의 민 낯에 분노합니다. 그 분노는 함께 분노하자가 아닌 당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라고 지적합니다.
 
제가 좀 화가 나서 씩씩거린 장면이 좀 있긴 있어요(웃음). 시나리오에 적힌 지문과 달리 제가 진짜로 좀 화가 났던 적도 있어요.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것도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 왜 다들 그렇게 책임 회피 만 하는 건지. 극중에서 장학사와의 대치 장면에선 진짜 저 진심으로 화가 났었어요. 정말 그때는 제가 연기를 하는 거지만 주체가 안돼서 좀 민망할 정도였어요. 지금도 사실 너무 화가 나요.”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1부와 2부로 나뉜 구성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부는 소희의 에피소드 그리고 2부는 유진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두 주인공 소희와 유진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딱 한 번 극중에서 만나긴 합니다. 물론 그건 만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만난 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애매합니다. 소희가 유일하게 즐겨하던 춤 동아리에서 였습니다. 소희가 취업으로 빠진 자리에 유진이 들어갔고, 소희가 동아리에 하루 놀러 온 날 춤 연습실에 유진이 멤버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인공 두 사람이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 영화는 처음이긴 해요(웃음). 소희와 유진 두 사람이 유일하게 공유한 지점이 춤 이에요. 근데 왜 하필 춤일까 싶긴 했어요. 근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춤은 모두에게 로망이지 않나 싶어요. 저만 해도 진짜 춤 잘 추고 싶어요. 소희도 그랬지만 유진도 그냥 그리고 그저 춤이 유일한 현실의 탈출구가 아니었나 싶어요. 현실은 너무 힘들어도 욕구는 분명 존재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 단 게 좋았어요.”
 
배두나.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배두나는 인터뷰 도중 일부 장면 설명에선 감정이 북 받치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이 얘기 자체가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이고 해당 실화를 이미 한 지상파 탐사보도프로그램에서 심도 깊게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 자체가 우리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책임 회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바뀌지 않을 시스템의 문제 등을 거론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다음 소희입니다. ‘소희앞으로도 그리고 계속해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발 다음 소희가 없었으면 해요. 그런데 또 있겠죠. 또 있을 수 밖에 없겠죠. 영화 한 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 안해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신다면 지금 이런 문제가 있고 그 문제에 함께 분노해 주시고 많이 얘기를 하면서 잊혀지지 않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언젠가는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영화 속에서 소희의 죽음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느낀 분노를 관객들도 느끼면서 함께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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