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관치 금융'에 대한 기시감
2022-11-25 09:00:00 2022-11-25 09:30:44
"지금 같은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마도 당사자(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
 
금융지주 CEO 거취와 관련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앞서 지난 9일 금융위원회는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과 관련해 손 회장 문책경고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종료되며 연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당국의 의결이 나오면서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다만 과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때와 마찬가지로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손 회장이 제기할 경우 법적으로 연임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시장에서는 손 회장이 DLF 관련 행정소송에서 1,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법원을 통해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확인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원장의 발언이 손 회장에게 '소송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보낸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원장은 이후 “소위 말하는 외압이라든지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다른 전문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외압에 맞서는 건 20여 년간 전문성을 가지고 해왔던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원장의 발언은 10여년 전 '관치 금융'의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 2013년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거취와 관련해 내놓은 발언으로 퇴진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시 신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관련한 거취 질문에 “합리적으로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신 전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10여일 뒤 사의를 밝혔다.
 
금융권에서 이명박정부 시절 금융권을 호령했던 '4대 천왕' 시대가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당시 금융권 4대 천왕은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등을 지칭한다.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알려진 이들은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금융권에서는 이팔성 전 회장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가족 관련 의혹으로 조기 사임한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의 자리를 채울 후임으로는 내부 출신 인사들과 함께 이 전 회장이 부상한 것이다. BNK금융은 금감원의 권고에 따라 외부 인사도 회장 후보군에 넣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꾸면서 외풍에 취약하게 됐다.
 
현재 국내 경제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시대 속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금융당국 수장들은 업계의 불안을 불식시키고 함께 산적한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 금융시장 안정을 주도해야 할 금융당국이 금융산업 주체자들의 경영권을 보장했느냐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기시감은 기시감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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