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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직원들은 무슨 죄인가요
2022-10-19 06:00:00 2022-10-19 06:00:00
‘푸르밀은 나의 첫 직장이다. 그리고 이곳은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푸르밀 직원이 쓴 글, 첫 번째 문단의 내용이다. 국내 유업체 푸르밀에 다니던 370여명의 직원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사측이 내달 30일을 끝으로 사업을 종료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푸르밀 전 임직원은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는 지난 17일 전사 메일을 통해 사업 종료·정리해고 공고를 보냈다. 사유는 매출 감소·적자 누적이다.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자구책을 썼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신 대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업 종료 결정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푸르밀은 경영 악화로 인해 매각 작업에 나서는 등 움직임을 보인 적은 있지만 돌연 사업을 접겠다고 선언할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종료일을 한 달여 앞두고 전 직원에게 정리해고 대상이라고 통보한 것은 무엇보다도 상식 밖이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도 있다. 근로기준법 24조3항은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해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에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푸르밀 사측이 해고를 통보한 건 지난 17일, 즉 44일 전이다. 신 대표 역시 공지를 통해 당초 50일전까지 해고 통보해야하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푸르밀 노조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푸르밀 노조는 신 대표 및 부회장 면담을 통해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사측은 이와 관련한 제시나 제안도 듣지 않고 노사 간의 대화의 창을 닫아 버렸다는 게 김성곤 노조위원장의 주장이다. 푸르밀 내부를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사측이 직원들과 정리해고에 대한 협의를 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꼬집었다.
 
3년 전 신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가공 사업 이외에 수익을 내는 신규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푸르밀은 시대의 변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너 일가가 사업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가 아닌 안일한 주먹구구식의 영업을 해왔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신 대표를 비롯한 푸르밀 오너 일가의 무능은 전 직원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다. 블라인드 앱에 푸르밀 직원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나저나 나 이제 뭐하지.’ 도대체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유승호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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