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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초대석)"장애인 배제 말고 함께 살아갈 방법 찾아야"
시각장애 1호 변호사 김재왕씨
공익단체 '희망법'서 사회적 차별 철폐 활동
“오히려 강경한 기업들…소송의 한계 늘 고민”
"장애인 포함한 모든 국민, 행복추구권 보장돼야"
2022-08-23 06:00:00 2022-08-23 07:10:12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변호사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최근 종영됐다. 시청자들은 '보통 변호사'를 능가하는 '이상한 변호사'의 능력에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가혹하리만큼 차갑다.
 
김재왕 변호사만 봐도 그렇다. 그는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 변호사로서 장애인을 소비자로 보지 않는 기업 등을 상대로 장애인 권익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일상 속 관행적 차별을 끊어내기 위함이다.
 
“소송을 해서 사회적 이목을 끌더라도 정작 상대방은 더 강경해져요. (비교적 차별적 시스템을 완화 운영해왔던) 여타 기업까지 오히려 완강한 태도를 갖추게 되고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소송을) 시작하는 것인데, 오히려 이런 인식을 더 강화하는 모습이라, 이것이 소송의 한계일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에게 롤러코스터 탑승을 제한한 에버랜드 운영 주체 삼성물산(028260)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2018년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삼성물산 측은 즉시 항소했다. 항소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반이 넘도록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도 장애인 탑승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에버랜드 소송 연장선상에서 3대 영화관(CJ CGV(079160)·롯데시네마·메가박스)을 상대로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 청구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 사건도 1·2심 원고 일부 승소를 이끌어냈으나 영화관 측에서 항소에 상고를 거듭해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김 변호사는 “영화관 상대 소송도 (장애인이 비장애인 소비자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이라며 “동등한 문화 향유권을 위해 영화관 사업자들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장비를 구비하고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다투게 될 줄 몰랐다”며 “영화관 사업자 측에서 (시·청각장애인 장비 구비·제공) 요구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시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사업자 측은) 그러한 요구를 이행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들어 상소했고, 이행 시기를 늦추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를 비롯한 '희망법' 변호사들은 멈추지 않고 있다. 김 변호사는 모바일 앱이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국가정보화기본법상)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만든 앱은 (시각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도록) 의무화돼 있어 이를 전제로 제작하지만, 사기업에는 그런 의무를 두고 있지 않다”면서 입법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피해를 입어도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피해자를 위한 사법지원 역시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진술 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범죄 피해자는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며 “(장애인 피해자 진술조력인 의무화 등과 같은)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던 그가 왼쪽 눈 시력마저 모두 잃은 때는 2009년, 서른한 살이었다. 김 변호사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서울대 생물학도 였던 그는 전공에 대한 꿈을 접고 2009년 서울대 로스쿨행을 택했다. 졸업 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3년간의 로스쿨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시험까지 합격했지만 문제는 합격 이후였다. 갈 수 있는 곳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자연스레 공공기관이나 공익소송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선택지와 비교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사회는 내가 모르는 사람(장애인)이 왔을 때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선택지와 내가 모르는 사람을 일단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의 선택지 중에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서 전자 보다는 후자를 택해왔어요.”
 
'현실 속 우영우'인 김 변호사가 살면서 가장 가치를 두고 있는 법조항은 무엇일까. 그는 헌법 10조를 택했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번주 스위스 제네바 UN본부에서 열리는 UN 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 심의 회의 참석해 장애인 권익보호 수준 등 국내 현실을 알릴 계획이다.
 
김재왕 변호사. (사진 제공=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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