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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화 사각지대①)근로시간 유연화…"52시간제 무력화 소지 다분"
경영계, 근로자와 합의 통해 고용시장 탄력성 부여 주장
노동계, 52시간제 틀 무너지고 근로자 업무 부하 가중 우려
"해외 사례 참고하고 사회적 공감대 마련하는 등 도입 신중해야"
2022-05-30 06:00:00 2022-05-30 06:00:00
[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수차례 제시했던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싼 업계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경영계는 근로자와 고용주의 합의를 통해 고용시장에 탄력성을 부여하고 산업구조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노동계는 원 취지가 무색하게 52시간제의 틀이 무너지고 근로자들의 업무 부하만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정식 장관은 지난 25일 근로시간 유연화와 관련해 "노동시간 단축 기조는 유지하면서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도록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52시간 제도로 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호소에 제시한 답변이다.
 
근로시간 유연화란 근로시간을 융통성 있게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1년 중 특정 기간에 52시간을 초과하는 일을 하면 다른 기간에 이를 빼서 연간 평균 근로시간 52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합의를 거쳐 흐름에 맞게 노동시간을 조절하고 이들에게 근로 선택권을 주는 것이 골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 1주 40시간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노동 정책인 주 52시간제로, 지난 2018년 3월 법 개정을 거쳐 같은 해 7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그간 주 52시간제 시행은 과도한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고, 일과 생활 균형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규제의 방식이 일률적으로 적용돼 제약이 많고, 4차 산업혁명 가속화 등 산업구조 변화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같은 근로시간 유연화는 경영계를 중심으로 계속 요구돼온 사안이다. 일률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업무가 몰릴 수 있는 특정 시기에도 부하가 걸려 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경영계 논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20~27일 중소 제조업 55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주 52시간제 시행 실태 및 제도 개선 의견 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의 42.4%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구인난', '사전 주문 예측 난항에 따른 유연근무제 활용의 어려움',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이 구인난, 불규칙한 주문량, 현장과 맞지 않는 유연근무제 등으로 주 52시간제 시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노사가 모두 원할 경우 연장 근로를 보다 유연하게 규정할 수 있도록 월 단위 연장근로제 도입,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확대 같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대체로 경영계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사실상 주 52시간 제도가 무력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에 맹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주 52시간제 보완책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대폭 확대하고,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지만 충분히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는 1일, 1주 노동시간 제한이 없는 제도적 허점을 노리고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자 하는 사용자 단체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심각한 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전문가 역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 도입이 신중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어렵게 도입된 주 52시간 제도는 근로시간 단축을 일정하게 이끌어낸 측면이 있는데 이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며 "특히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 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실정이다. 근로시간 유연제가 잘못 적용되면 근로자가 더 일을 많이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제도가 진행된다면 '선 근로시간 단축, 후 유연화'를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울러 근로시간이 짧으면서도 근로 체제가 다양한 독일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유연제 도입에 앞서 이런 부분에 대한 검토가 신중히 이뤄지고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수차례 제시했던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싼 업계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공업사에서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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