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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초대석)"사랑을 쥐고만 있기엔 삶이 너무 짧습니다"
'안나의 집'에 사는 푸른 눈의 산타 김하종 신부
"내 진짜 소원은 '안나의 집' 문 닫는 것"
"노숙인, 돌볼 대상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
"가진 것 지키려고만 할 때 사는 데 급급해져"
2021-12-14 06:00:00 2021-12-14 0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해 경기 성남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신부의 이름은 ‘김하종’(본명 빈첸시오 보르도)이다. 성남 김씨에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다. 물론 성남 김씨는 김 신부가 만든 성이다. 김 신부는 성남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과 어르신들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하고, 가출 청소년 등 갈 곳 없는 이들을 보듬어준다. 삶에 뿌리를 두지 않고 세상을 등진 이들을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2년간 지속돼온 코로나19 여파로 서민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면서 ‘안나의 집’을 찾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예산과 일손의 한계 속에서 김 신부가 하는 일은 사실상 고통에 가까워 보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팍팍해진 사회 속에서 그 고통은 기자에게도 오롯이 전달됐다.
 
교구장 등을 목표로 두지 않고 한국까지 와서 왜 이런 삶을 사느냐고 묻자 김 신부는 갈 곳 없는 이들 곁에 하느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신부의 진짜 소원은 ‘안나의 집’을 문 닫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은 이들의 충실한 종이자 아버지로 살겠다고 했다.
 
‘코로나19 폭풍’ 속을 뚫고 지나가고 있는 김 신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들은 노숙인의 삶을 모른다”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11일 오후 2시경 성남동 성당을 찾았다. 성당 앞마당에서 앞치마를 두른 김 신부와 봉사자들이 노숙인, 어르신 등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며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날 메뉴는 닭백숙과 밥·김치·빵·생수.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와 종합감기약·핫팩·비타민·파스·치약·칫솔 등도 함께 담겼다.
 
성당 앞에는 이 도시락을 받기 위한 노숙인 등이 300m 가량 길게 줄 지어 서 있었다. 줄 선 사람들 중에서는 새치기를 했다며 몸싸움을 하고,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김 신부에게 물품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익숙한 듯 김 신부는 능숙하게 대처했다. 물품을 더 달라는 어르신에게는 마스크를 건네며 “할머니, 안녕히가세요” 하고 인사했다. 
 
인터뷰할 시간이 다 됐다고 말을 건네기가 미안할 정도로 김 신부는 바빴다. 오후 3시30분경에서야 김 신부는 웃으며 시간을 낼 수 있다며 ‘안나의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노숙인과 어르신들 다루는 게 쉽지 않겠다는 말에 김 신부는 “민원이 들어와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무분별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민원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절차에 따라주지 않는 노숙인이 미울 때가 있었다.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노숙인 무료급식을 못 하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다.
 
그는 “(노숙인 등에게) 잔소리하게 되고, 강한 어조로 말하게 될 때가 있는데 아픈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미안하고 스스로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며 “하지만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계속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고, 봉사자와 노숙인 중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타격이 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열 체크와 손 소독, 거리두기 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안나의 집’ 식사 제공 과정에서 아직까지 코로나19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도시락을 받기 위한 노숙인 숫자는 계속 급증하고 있다. 최근 2년간 하루 평균 750명, 토요일 850명이 도시락을 받기 위해 ‘안나의 집’을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1000명 가까이 오는 날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성남시청은 주변 민원에 대한 답변을 재촉하고, 어떤 공무원은 김 신부에게 왜 기초수급을 받는 멀쩡한 사람에게도 밥을 주느냐고 물었다. 김 신부는 “실제로 이곳에 오는 분들 중 수급비를 받는 사람도 있다”며 “수급비가 한 달에 70만원 정도 되는데 지하방 월세 30만원, 전기 가스비 10만원 등을 제하고 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다가오는 25일 크리스마스와 내년 새해, 설날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에도 ‘안나의 집’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노숙인의 삶을 잘 모른다”며 “그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길거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김 신부는 “노숙인들에게는 어린 시절 상처·정신적 문제·사회성 결여·성격·육체적·경제적 문제 등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그들이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안나의 집’을 함께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은 단순히 불쌍해서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김 신부가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전달할 때 같은 “사랑한다”는 말을 함께 건네는 이유다.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같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상기시키는 마음이 담겨있다.
 
'안나의 집'에서 도시락을 받아가는 노숙인. 사진제공/안나의 집
 
경찰에서 연락 올 때마다 가슴이 ‘쿵’
 
김 신부는 경찰서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한다. 경찰이나 병원에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예감은 대부분 맞았다.
 
주변에 연락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노숙인이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중상 또는 사망 시 경찰 측에서 주로 김 신부나 ‘안나의 집’으로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아무래도 경찰서에서 자주 연락이 온다”며 “성남 거리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나와 우리 직원들이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경찰이나 구청 측에 세상을 떠난 노숙인을 발견하면 ‘안나의 집’으로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해뒀다는 것이다.
 
안나의 집은 매년 11월 노숙인 위령제를 지낸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삶이 외롭고 버거웠을 (노숙인) 친구들이 쉼을 얻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난독증 장애 덕에 사람들 더욱 이해 
 
서른 살 하얀 제의를 입기 전 청년 김 신부가 인간으로서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버지가 농부였고, 대를 잇거나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봉사하는 것이 좋았다”며 “그런데 난독증 장애가 심해서 남들보다 노력해서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고, 언어 공부를 할 때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땐 그게 그렇게 열등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난독증 장애 덕분에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다”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하겠다는 신념을 단단하게 해줬다”고 했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난독증이라는 장애가 나아갈 길의 방향타가 되어 준 것이다. 김 신부는 ‘한국난독증알리기운동본부’를 운영 중이다. 한국난독증협회가 김 신부의 난독증알리기운동본부 모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물었다. 김 신부는 “내가 가진 사랑, 재능 등을 세상에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려고만 하면 살아가는 내내 그것만 보게 되고 그것들을 지키는데 급급해져서 시야가 좁아집니다. 하지만 그것들만 지키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너무 짧아요. 내가 가진 것들을 펴서 세상에 나누려 한다면 불안감이 덜어지고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겁니다. 그것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길이 아닐까요.”
김하종 신부(본명 빈첸시오 보르도). 사진 제공/안나의 집

 
경기 성남 '안나의 집'에서 만난 김하종 신부(본명 빈첸시오 보르도).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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