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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쪽방촌', 세입자·토지주 '동상이몽'에 개발 난항
개발 계획 발표 6개월째…'개발 방식' 두고 갈등 지속
세입자 "임대주택", 토지주 "민간 분양 수익" 평행선
전문가들 "공공주도 완료, 성공 사례 없다는 점이 걸림돌"
2021-08-09 06:00:00 2021-08-09 06:00:00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으로 오르며 무더위가 한창인 6일 오후, 서울 동자동 서울역 인근 쪽방촌 주민들은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 더위에 취약한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공기 순환이 되지 않는 좁은 집이라 대문을 열어놓고 있거나 '차라리 밖이 더 시원하다'며 집앞에 나와있기도 했다. 쪽방촌 인근 새꿈어린이공원은 어린이가 없는, 더위에 지쳐있는 어른들의 쉼터였다.
 
20년 넘게 일용직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는 주민 A씨(68)는 "우리 같은 세입자들은 뭐가 지어지든 여기서 밀려나지만 않으면 된다"며 "지금 임대료로 갈 수 있는데가 서울엔 없으니 버티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해보이는 이곳은 정부의 개발 계획 발표가 6개월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개발 방식에 대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2·4대책 발표 당시 쪽방촌 일대에 2026년까지 공공주택지구 사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4만7000㎡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1450가구와 분양주택 960가구 등 총 2410가구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6일 오후 무더위에 지친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윤민영 기자
 
이 대책의 핵심은 쪽방촌 주민의 재정착이다. 세입자들은 0.5~2평이던 집이 5.44평으로 넓어지고 임대료도 평균 24만4000원에서 3만7000원으로 85%가 저렴해진 집에 살 수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이지만 토지주 입장에서는 정부가 소유하는 임대주택이 늘어날수록 줄어들 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역 쪽방촌 주민대책위원회는 "세입자나 종교시설에서는 공공주택을 찬성하고 있지만 실제 거주를 하지 않는 토지주, 즉 다주택자들은 개발 이익을 이유로 민간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가 용적률 상향을 공공개발 인센티브로 줬음에도 불구, 이를 민간 개발에도 적용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며 양측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주민대책위원회 명부상 800~900여명이 살고 있지만 실제 퇴거를 안 한 주민까지 합하면 1100여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토지주가 실제 거주하는 비율은 10%가 되지 않는다. 세입자와 토지주 모두 개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그 방식을 두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동자동 인근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여긴 대부분 토지주들은 실제 거주를 안하는 다주택자로 월세 장사를 하고 있어, 그들 입장에서는 빨리 개발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며 "이들은 공공개발하면 낮은 감정가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인센티브가 적어도 재산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민간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토지주들은 지난 6월 법무법인을 선임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주택개발 계획을 철회하고, 곧 있을 지구지정을 막겠다는 취지다. 같은 공공개발이라도 공공재개발은 주민이 50% 이상 동의해야 사업추진이 가능한 반면 서울역 쪽방촌은 공공주도 사업으로 정부가 지구지정을 끝내면 어쩔 수 없이 사업이 추진돼 '강제 수용'과 비슷한 격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공공주도로 사업적인 성과과 완료된 선례가 없고 이로 인한 개발 이익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 토지주들의 반대와 더딘 공급 속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주도 개발을 하려면 땅의 소유권을 일단 정부로 넘겨야 하는데, 토지주들은 본인 재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보상을 하더라도 토지주들 눈높이에 맞추려면 금액이 올라갈 수 밖에 없고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애초에 공공주택 공급의 취지를 벗어나게 되므로 현실에 부합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빨간 깃발을 단 집은 정부 주도의 공공개발을 반대하고 민간 재개발을 원한다는 뜻이다. 사진/윤민엉 기자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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