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봄, 시를 읽으며 맞이하자
입력 : 2021-03-06 06:00:00 수정 : 2021-03-06 06:00:00
하염없이 봄비가 내리고 있는데, 담벼락 안쪽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버린 듯한 이불이 그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산 아랫동네에 부는 바람도 제법 을씨년스러웠고, 빗줄기도 그칠 줄 모르고 스산하기만 했다. 이러한 시간적 ·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꾸려진 시가 졸작 「배려」다. 다음은 그 전문.  
 
담벼락에 숨은/ 어미 고양이가/ 누군가 내다 버린/ 작은 이불에서// 나지막이 토닥이며/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재우자// 잠투정하며 칭얼대던 보슬비도/ 뚝,/ 그쳤다. 
 
이십 몇 년 전, 산 아랫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졸작은 그때의 풍경을 회상하며 시로 꾸려 시집 『사선은 둥근 생각을 품고 있다』에 수록한 것이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그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동네. 시에서는 “잠투정하며 칭얼대던 보슬비도/ 뚝,/ 그쳤다.”고 했지만, 사실 그때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비가 그쳐서 고양이들이 춥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비가 그쳤다고 했다. 그러니까 “뚝,/ 그쳤다.”에는 시인의 희망과 상상이 내재 되어 있다. 시의 제목 ‘배려’는 그렇게 붙인 것. 
 
모든 계절이 그렇듯 봄은 수월하게 오지 않는다. 쉽게 계절을 보내지 않겠다는 겨울의 심술이 꽃샘추위다. 봄눈이다. 그래서 시인 김광섭(1906-1977)은 3월이라는 시에서 「3월」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3월은 바람쟁이/ 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 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   봄을 마당에서 키운다(중략)// 3월 바람 4월 비 5월 꽃/ 이렇게 콤비가 되면/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김광섭 「3월」 부분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도 뜯”는 것. 그것이 3월이다. “바람쟁이”다. 그리고 봄을 가리켜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모두 3월을 의인화한 것이다.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환절기인 이맘때 읽으면 한 편의 시가 향기가 되어 우리네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닐 듯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인 미요시 다쓰지는 “거위-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울고 있습니다. 도마뱀-어느 돌 위에 올라가 보아도, 아직 내 배는 차갑다.”며, 봄이 되어도 잔설처럼 남아 있는 외로움과 추위를 거위와 도마뱀을 빌려와 「봄」이라는 제목으로 풀어냈다. 해빙을 바라는 마음도 함께 느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3월이 되어 한 번쯤 동요를 부르고 싶은 감흥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어릴 때부터 불렀던 노래,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봄」, 오수경 작사, 박재훈 작곡)를 흥얼거려 보자. 무심코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날 것 같은 기분. 자신이 마치 병아리가 될 것 같은 동심. 바로 그것을 느끼는 시간이 찾아오리라.    
 
그것은 단순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그 이상이다. 대지에 움트는 생명의 기운이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올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이 사라진다고 느끼자. 그래서인지 “봄이 돌아오듯이 건강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어느 지인이 카톡에다 써놓은 문장이 명료하게 각인된다. 자신이나 혹은 주위의 사람들이 한 번쯤 어딘가 심하게 아팠을 중년의 아픔과 간절함이 느껴진다. 
 
봄은 겨울의 심술과 시기를 뚫고 일어선 힘찬 혈관 같은 것이다. 새로이 생겨나 생명을 꽃피우는 혈류처럼 우리의 삶을 흐를 것이다. “겨울 내내/ 어디 있나 했는데/ 목련 꽃망울 속에서 토옥/ 튀어나오더라고요.”라는 시인 오순택(1942)의 작품 「3월」처럼 3월이 왔다. 봄이 왔다. 동서고금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봄을 노래한 가편들을 읽으며, 꽃 소식을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꽃이 되어 봄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아직도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꿈을 꾸면서.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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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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