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범죄는 나쁜 판결을 먹고 자란다
입력 : 2020-12-15 06:00:00 수정 : 2020-12-15 06:00:00
조두순이 돌아왔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큰 탈 없이 집으로 갔다. 8살 여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평생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전과 18범은 무사히 귀가했다. 18살 때 범죄에 눈을 뜬 뒤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범죄를 저지른 자의 바깥 생활은 이렇게 또다시시작됐다.
 
전국구 범죄자가 된 조두순 때문에 이제는 전 국민도 알게 됐다. 술 먹고 죄 지으면 봐준다는 사실을. 심지어 사람을 때려 죽여도 말이다. 1995년 조두순은 60대 남성 폭행치사죄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음주에 따른 심신미약이 인정되면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그리고 14년 뒤인 20093271심 재판부는 잔혹한 아동성폭행범인 그에게 또다시음주 감경을 해준다. 그러니까 이 상습 범죄자에게는 아무리 끔찍한 범행을 저질러도, 그리고 그 짓을 반복해도 계속해서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졌다. 마약이나 술에 취해 죄를 범하면 가중처벌을 하는 외국과는 오히려 정반대다. 그렇게 18살의 초범자는 판결을 먹고 자라 차곡차곡 범행을 쌓으며 50년 뒤 괴물이 되었다.
 
지난 4월 나흘 간격으로 2명의 여성을 잇달아 살해한 최신종도 그렇다. 조두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음주 감경이 아닌 합의 감경을 먹고 자랐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그는 특수강간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칼로 위협하고 때린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친구의 가족들에게 살해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판결 결과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었다. 실형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5년 최신종은 또다시 죄를 저지른다. 이번엔 대형마트 절도죄였다. 1심에서는 3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지만 재심을 통해 징역 3,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이번에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사실이 통했다.
 
지난해에도 지인 부부로부터 성추행 고소를 당하자 최신종은 또 합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또 먹혀들었다. 당시 피해자 부부는 그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합의해줬다고 했다. 결국 수차례 반복된 범죄에도 그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몇 개월 뒤 연쇄살인범이 되어 나타났다. 만약 최신종이 수차례 범죄 중 단 한 번만이라도 감경을 받지 않고 사회로부터 격리됐다면 어땠을까. 아마 두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지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는 판례들 역시 기가 막히다. 지난해 수원지방법원은 소위 몰카범에게 징역 10,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서다. 정작 이 피고인은 촬영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비난했음에도 이런 판결이 나왔다. 소위 정준영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행위 자체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을 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낸 점을 감경 요인으로 삼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반성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판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라도 가진 것인가. 이러니 반성문 대필 업체가 성행하고, 반성문 제출이 감형 전략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믿지 못할 반성이 아니다. 지은 죄에 합당한 처벌이다. 그것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다.
 
이제는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썼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형을 감면해주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현명한 판결이란 가해자의 변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형 산업1부장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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