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의 출장은 배출가스 조작 혐의에 관한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결론이 날 확률이 커졌다. 여러 정황상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 벤츠코리아 책임자로서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게 될 것으로 보여서다. '명예 서울시민'이 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드러냈던 한국에 대한 애정도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고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란 타이틀만 챙겨 떠났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5일 수입 자동차 업계 등에 따르면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사장은 지난 5월 중하순 한국을 떠나 해외에 머물고 있다. 실라키스 사장의 출국 시점이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앞둔 시점이라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복을 입고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모습.사진/벤츠코리아
검찰은 실라키스 사장이 출국한 지 일주일 정도 뒤인 5월27~28일 벤츠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6일 환경부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판매한 C200 d와 GLC220 d 4Matic, GLE350 d 4Matic 등의 경유 차량 12종 3만7154대에서 배출가스 불법 조작한 사실을 확인하고 인증 취소, 과징금 776억원과 함께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인증시험 때와는 다르게 실제 운행 시 질소산화물 환원 촉매의 요소수 사용량이 줄어들고 배출가스 재순환 장치의 작동이 중단되는 등의 불법 조작 프로그램이 임의로 설정돼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요하네스 타머 전 아우디폭스바겐 총괄사장이 배출가스 조작으로 기소된 뒤 출장을 이유로 한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 선례도 실라키스 사장의 출국을 수사 회피로 해석하는 근거가 됐다. 독일 본사가 환경부의 결과 발표 직전에 실라키스 사장을 미국으로 이동시키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벤츠는 5월1일 실라키스 사장이 9월1일부터 벤츠 USA의 영업 및 제품 총괄을 맡게 된다고 밝혔다. 실라키스 사장은 한국을 떠나 독일 본사, 미국 등지에서 새 임지의 업무 파악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실라키스 사장이 앞으로도 다시 한국을 찾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츠코리아가 실라키스 사장의 출국에 대해 "업무상 출장"이란 입장을 유지해왔는 데 한국에서의 임기가 끝나면 돌아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라키스 사장의 한국 내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다음 달부터는 뵨 하우버 벤츠 스웨덴 및 덴마크 사장이 벤츠코리아 대표를 맡는다. 다음 달까지 보름 정도 남았고 귀국 후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장 한국에 온다고 해도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없다.
실라키스 사장의 임지가 당초 미국에서 캐나다로 바뀐 것도 귀국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이유 중 하나다. 미국 법인의 업무 파악이 두 달가량 귀국을 하지 않은 이유가 된 것처럼 앞으로 맡게 될 업무가 변경되면서 한국에 오지 않을 새로운 명분 내지 핑계가 될 수 있어서다.
벤츠코리아 대표로서의 마침표를 검찰 수사 회피용 출장으로 찍는다면 책임은 다하지 않고 실리만 챙겨 떠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 문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상황이라 실라키스 사장에게 한국 내에서의 논란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논란이 커도 벤츠코리아 사장으로 올린 실적은 남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벤츠코리아는 실라키스 사장이 온 다음 해인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시장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19%였던 점유율은 지난해 32%에 정도로 상승했다. 올해도 수입차 시장을 30%에 가까이 차지하면서 독주하는 모양새다. 2018년 수입차 최초로 연간 7만대를 돌파했고 10세대 E클래스는 단일 모델로는 처음 10만대 판매를 달성했다.
실라키스 사장이 그동안 드러낸 한국에 대한 애정과 활발할 활동의 의미도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실라키스 사장은 지난해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고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2018년에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으로 되기도 했다.
서울 명예시민은 3년 이상 계속 거주 혹은 거주 5년 이상 외국인 등 중에서 시정 발전에 기여했거나 귀감이 되는 사회활동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도 맡았다.
한편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실라키스 사장의 귀국 여부에 대해 "출장 중이고 구체적인 일정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발표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기술적·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당 기능을 사용했고 수백 가지 기능이 상호작용하는 통합 배출가스 제어 시스템의 일부라고 반박한 바 있다. 차량의 안정성과 무관하고 이미 판매 중단돼 현재 판매 중인 신차에는 영향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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