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정직한 후보’, 웃다가 지치게 될 ‘라미란 효과’
동명의 브라질 영화 ‘리메이크’…국내 정치 현실 결합 ‘웃음 폭탄’
배우 라미란 ‘원맨쇼’, 대사+몸연기→배우 필터링 거치며 순도↑
2020-01-31 00:00:01 2020-01-31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역발상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참신하다. 새롭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정직한 후보는 천편일률적인 웃음의 코드에서 보이지 않는 1인치를 왜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거짓말이 지금까지의 웃음의 단골 소재였다면, ‘정직한 후보참말이 웃음이 된다. 진짜가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역발상은 의외로 높은 타율을 선보인다.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그는 4선 당선을 위해 보좌진들과 고군분투를 한다. 거짓말은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상이다. 멀쩡히 살아 있는 할머니는 납골당 유골함까지 모셔 놓고 있다. 서민 코스프레를 위해 허름한 서민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도 거짓이다.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 남편과 함께 몰래 뒷문으로 빠져 나와 인근 고급 주택으로 빠져 나와 이동한다. 남편과의 관계도 쇼윈도 부부 뺨을 후려칠 정도다. 백수건달 남편 만식(윤경호)는 아내 상숙의 거짓말 퍼레이드를 만들어 내는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짝꿍이다. 이들 부부, 정말 꼴불견 가관 종합선물세트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 이렇다면 뒷목 잡고 100번은 쓰러질 충격이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사진/NEW
 
지역구 선거에서 경쟁 후보와 짬짜미까지 펼친다. 이건 거짓말의 끝판왕이다. 상숙은 그렇게 4선 당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상숙의 막가파 거짓말 퍼레이드가 안타까운 건 딱 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에겐 이미 죽은 할머니이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고귀한 할머니로 포장된 김옥희(나문희) 여사뿐. 상숙의 친 할머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 암자에 숨어 살던 옥희 여사는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한다. “죽기 전에 제발 우리 상숙이가 거짓말 안하고 정직하게 살게 해 달라.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사진/NEW
 
여기서부터 대놓고 코미디가 시작된다. 상숙은 하루 아침에 참말의 대가로 변신한다. 옥희 여사의 간절한 기도가 이뤄졌다. 자신도 모르게 속내가 튀어 나와 버린다. 제어가 불가능하다.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며 대중들에게 막말(?)을 쏟아낸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자신의 자서전이 대필이고, 베스트셀러 등극은 알바 사재기라고 커밍아웃을 해버린다. 남편 만식과 함께 출연해선 잠자리 19금 송사 문제까지 거침 없이 털어 놓는다. 상숙의 보좌관 희철(김무열)은 환장할 노릇이다.
 
그 뿐이 아니다. 평소 눈도 마주치기 어렵던 시어머니에겐 막말을 넘어선 고부갈등의 속내를 시원스럽게 토해낸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정신과 상담도 받는다. 무당을 불러 굿판까지 벌인다. 한방 침 치료까지 받아 봤다. 도로아미타불이다. 이젠 방법이 없다. 선거가 코앞이다. 상숙과 희철 그리고 만식은 전략을 수정한다. ‘솔직한 게 죕니까. 여러분이라고 소리치는 상숙. 그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던 정직한 후보가 되기로 결정한다. 이제 그는 솔직함으로 무장한 체 거짓말로만 이뤄진 대한민국 정치에 빅 엿을 날릴 준비를 끝마친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사진/NEW
 
정직한 후보 2014년 브라질에서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국내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설정은 한국영화에선 전례가 없던 설정이기도 하다. 아마도 정직한 후보리메이크는 이 지점에 주목한 듯싶다. 특히나 포인트는 국내 정치 풍토와 맞닿아 있다. 선거철에만 고개를 숙이는 정치인들, 선거가 끝나면 국민을 내려다 보는 정치인들. 그들의 모습은 아이러니의 전형을 드러내며 국내 정치판을 개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다. 이 모습은 역발상의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모습이고, ‘정직한 후보를 꿈꾸는 대한민국 관객들에겐 사실 가장 꿈꾸게 되는 모습이다. 오히려 낯선 풍경 속에서 등장하게 될 웃음의 코드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직한 후보는 웃기다.
 
이 웃긴 정직한 후보는 주인공 주상숙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의 완벽한 1인 코미디 독재로 이뤄져 있다. 충무로에서 드라마와 코미디가 중첩되는 배우는 흔치 않다. 특히 여배우로 한정하면 라미란이란 배우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그는 러닝타임 동안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대사를 소화하는 능력은 라미란의 전매특허다. 같은 단어도 라미란이란 필터를 투과하면 웃음이 덧입혀진다. 몸 연기 코미디는 더욱 강력하다. ‘라미란 필터효과는 이 지점에서 정직한 후보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구축시킨다. 영화 속 몸 연기 코미디슬랩스틱이 아닌 몸의 연기란 지점에서 라미란의 코미디 감각은 충무로 대체 불가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단 점을 증명한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사진/NEW
 
이 영화에서 의외의 수확은 배우 김무열의 존재감이다. 강력하고 인상 깊은 장르에서만 연기력을 펼쳐 온 김무열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힘을 뺐다. 그는 정직한 후보에서 코미디를 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미디가 김무열에게 달라 붙는다. 김무열의 연기 스펙트럼이 확장될 기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넘친다. 라미란과의 주고 받는 호흡까지 코미디의 리듬감으로 던지고 받는다. ‘완벽한 타인에서 성소수자 배역으로 출연해 임팩트를 선사한 윤경호의 과장가식의 넘나듦도 타이밍이 절묘하다.
 
정직한 후보는 대놓고 코미디를 내세운다. 하지만 반대로 대놓고 코미디가 아니다. 웃기는 지점에선 사정 없이 웃긴다. 웃기지만 뜨끔한 지점에선 따끔할 정도의 꼬집음도 있다. 우리 정치의 난장판을 비꼰다. 권력의 위선과 비리를 까발린다. 여러 특혜와 사학 비리를 들춰낸다. 가진 자들의 추악함과 못 가진 자들의 아픔을 보듬는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 사진/NEW
 
대놓고 웃긴다. 하지만 대놓고 웃으라고만 하지는 않는다. 뜨끔하고 따끔하게 비꼬며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머리를 쥐어 박는다. 여의도 그 곳에 있는 수 많은 주상숙’. 2 12일 개봉 이후 우리도 천지신명에게 빌어 보자. 4 15일 한 표를 행사할 그 날의 마음 가짐이 새털처럼 가벼워질지 또 모를 일이다. 우선은 정직한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먼저 던지겠다. 이 영화의 웃음, 정직해서 더 즐겁고 웃긴다. 정직한 게 웃음을 주는 아이러니 세상에 대한 시원한 어퍼컷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