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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여론에 짓눌린 정치인들
2020-01-28 06:00:00 2020-01-28 06:00:00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정치인을 부모로 둔 자녀가 훌륭한 정치인이 될 확률은 꽤 높다. 그런데 요즘 한국은 부모 찬스를 쓰는 자식들을 맹비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조국 사태가 기름을 부은 듯하다. 부모 찬스로 자식들의 인턴증명서까지 쉽게 떼었다니 말이다. 
 
사회 정서가 이래서일까. ‘아빠’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려던 문석균 씨가 비난에 못 이겨 결국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했다. 이 보도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정치는 철학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는 선배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데 그게 ‘아빠’라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런데 왜 부모 찬스를 저토록 저주하는가. 아빠 찬스보다 문석균이란 사람이 과연 정치적 역량이 있는지 우선 따져보고, 역량이 없다면 아빠 찬스를 운운해도 늦지 않는 것 아닌가. 
 
세상이 무조건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돌아가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가진 자-못 가진 자, 배운 자-못 배운 자로 나뉘어 서로 할퀴고 상처내고... 이런 2분법으로 반목과 질시만 일삼는다면 한국은 퇴보할 게 분명하다.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더불어 살며 서로가 끌어주고 안아줘야 세상은 발전하는 것 아니던가.  
 
따라서 아빠 찬스를 무조건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아빠 찬스를 잘 이용해 세상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도 많지 않던가. 그 한 예가 막스 베버다. 베버는 섬유산업가이자 정치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제국 연방하원의원을 지낸 매우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독일 주요 정치인들이 항시 아버지를 찾아 집을 방문했던 까닭에 베버는 실제 정치에 대한 소상한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베버는 정치참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눈부신 책을 썼다.
 
프랑스도 선거 때마다 지방의 거물급 정치인들은 후손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고 호시탐탐 노려 구설수에 오른다. 2002년 6월 총선에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그의 지역구를 아들 루이 지스카르 데스탱(Louis Giscard d'Estaing)에게 물려줬다. 루이 데스탱은 루앙의 ESC(L'École supérieure de commerce) 그랑제꼴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즈니스 스쿨인 INSEAD(L'Institut européen d'administration des affaires)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과 미국의 루이뷔통 지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프랑스로 돌아와서 정치로 전향했고 자기의 고향인 샤말리에르(Chamalières)에서 시의원 생활부터 했다. 더욱 큰 논쟁거리는 2008년 3월 지방선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차남 장 사르코지(Jean Sarkozy)가 파리근교 뇌이(Neuilly) 시의원이 되고, 3개월 후 오 드 센(Hauts-de-Seine)의 도의원으로 도약했을 때다. 장은 이때 23세의 청년으로 뚜렷한 직업도 없는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이 출세 가도에 오르자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 제 5공화국의 왕조적 이미지라고 맹비난했다.  
 
이와는 반대로 아버지로부터 정치를 대물림받아 더욱 빛나는 정치인이 된 프랑스인도 적지 않다. 그중 한 사람은 나탈리 코시우스코-모리제(Nathalie Kosciusko-Morizet)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환경부장관을 지냈고 파리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나탈리는 조상으로부터 정치적 피를 이어받았다. 그녀의 아버지 프랑수아 코시우스코-모리제(François Kosciusko-Morizet)는 공화당 출신으로 세브르(Sèvres)의 시장이었고, 할아버지 앙드레 모리제(André Morizet)는 공산당과 사회당 소속의 상원의원이었다. 나탈리는 아버지의 지역구 근처인 에손의 롱쥐모(Longjumeau)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프랑스 상원 부의장인 발레리 레타르(Valérie Létard)도 정치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프랑시스 데꾸리에르(Francis Decourrière)는 1994년에서 2004년까지 유럽의원을 지냈다. 발랑시엔느(Valencienne) 축구클럽 회장이기도 한 데꾸리에르는 2001년까지 발랑시엔느의 시의원이었다. 이때 그녀의 딸 발레리는 노르 빠 드 깔레(Nord-Pas-de-Calais)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약했고, 노르(Nord)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후 사르코지 정부에서 결속력부차관, 환경부차관 등을 지내며 명성을 쌓았고 3선으로 부의장이 됐다.   
 
이처럼 부모 찬스가 무조건 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찬스를 이용해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부모보다 더 나은 사회적 공헌을 하고자 한다면 이를 매도하거나 말릴 하등의 이유는 없다. 단지 자신의 노력 없이 부모팔이만 일삼는다면 이는 마땅히 단죄해야 한다. 민주당은 문 씨의 출마를 포기하게 하기 이전, 문 씨가 전자의 부류인지 후자의 부류인지 먼저 따져봐야 했다. 여론으로 모든 결정을 한다면 선거는 왜 하는가. 물론 필자는 문 씨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따라서 문 씨를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 여론의 비위를 맞추기만 한다면 정치의 도는 언제 바로선단 말인가. 룰도 없이 여론만 의식해서 총선의 인재영입이나 공천을 마구잡이로 한다면 우리 정치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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