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걸친 '배터리 갈등' 끝이 보인다
미 조사국 "SK 증거인멸 맞아" 조기종결 가능성 커져
SK이노 "최종 소명 남아 있다"
입력 : 2019-11-27 18:27:20 수정 : 2019-11-27 18:37:04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지난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그간 LG화학 측에서 주장해 온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과 이로 인한 ‘조기 패소(default judgment)’ 판결 요청을 수용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SK이노베이션에게는 최종방어 기회가 남아 있다. ‘청문회’와 자료 제출 등을 통해서다. 27일 OUII의 의견서 제출 사실이 알려지자 SK이노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조사국의 의견은 우리가 소명자료를 내기 전에 LG화학 측 주장만 보고 내린 결정”이라며 “소명을 보면 최종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일축했다. 증거인멸 의혹도 모두 부인했다. 
 
재판부가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사건은 예정대로 내년 6월 예비 판결을 거쳐 10월 종결될 전망이다. 반면 주장이 배척돼 조기 패소 판결이 내려지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셀은 물론 모듈, 팩, 소재, 부품 등의 미국 내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국내외 다른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지난 15일 재판부에 “SK이노베이션 측의 광범위한 증거 인멸과 포렌식 증거개시 절차 대응(불응)에 대해 ‘조기 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이 가장 적절한 ‘처벌(sanction)’이라고 본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자료/ITC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OUII 의견서 결론 부분 발췌
 
LG화학 “2년 전 인력유출이 문제”·SK이노 “5년 전 특허침해 합의 했는데…”  
 
송사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은 2017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 공문을 보내 자사의 전지 핵심 인력 채용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해 12월 자사에서 옮겨간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올해 1월 LG화학의 승소를 확정하며 퇴직 후 2년간 전직을 금지토록 결론 냈다. 그러나 인력 유출은 계속 됐고,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법에 영업비밀 침해 금지 소송을 냈다. 5월엔 서울지방경찰청에 SK이노베이션과 인사담당 직원 등을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때부터 양사의 소송은 ‘난타전’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 초 ITC에 특허침해 혐의로 LG화학을 제소하며 대응에 나섰고, 같은 달 말 LG화학이 다시 특허침해 소송을 추가로 걸며 맞불을 놨다. 다투는 혐의가 영업비밀에서 특허로 판이 커지면서 앞서 2011년 12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소하면서 불거진 분리막 특허침해금지 소송과 LG화학 측 1심 패소에 이은 양사의 2014년 ‘특허 관련 비 쟁송 합의’ 사실까지 들춰졌다.  SK이노베이션은 합의 파기에 대해 지난 달 말 LG화학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건 상태다.   
 
자료/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
 
시장 선점한 LG화학, 바짝 추격하는 SK이노
 
LG화학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 파나소닉·중국 CATL에 이어 3~4위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선 LG화학 보다 1년 늦은 2000년 배터리 업계에 발을 내딛은 삼성SDI가 뒤를 잇고, 이보다도 훨씬 뒤처진 후발 주자 SK이노베이션은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2년 동안 전지사업본부 핵심인력 70여명을 빼내 갔다는 LG화학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본격 도전장을 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주 잔고가 같은 기간 14배 이상 증가한 점이 의심스런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난타전의 시작인 LG화학의 ITC 제소 시점도 묘하게 읽힌다.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의 미국용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위해 조지아주 공장 건설을 착공했다. 작년 말 LG화학과 삼성SDI도 눈독을 들였으나 결국 SK이노 측에 돌아간 물량이었다. 이에 더해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의 유럽용 전기차 배터리 물량까지 분점하면서 LG화학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양사는 ‘파우치형’ 모델에 주력, ‘각형’ 배터리에 주력하는 삼성SDI와 달리 앞으로도 계속 같은 시장을 양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환경 이슈로 세계 자동차 판도가 전기차로 기울면서 배터리 수요도 함께 증가할 전망이라 국내3사는 물론 각국 업체 간 치열한 각축전이 예고되고 있다. 결국 배터리 소송전은 시작이 무엇이든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는 다툼이 됐다.
 
경찰, ‘산업기술유출 혐의’ SK이노베이션 소환 시점 검토 중 
 
한편 LG화학이 형사 고소한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경찰은 SK이노베이션 소환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고소 사실은 지난 9월 경찰이 SK이노베이션 본사와 대덕연구단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알려졌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수사 상황과 관련해 “현재까지 피고소인 2명과 참고인 2명 등 4명을 조사했다”면서 “법인 1명(SK이노베이션)을 포함해 피고소인을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경찰의 소환 요구에 ‘미국 소송 결과를 지켜보고 출석일을 정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바 있다. 한 해를 달군 난타전의 시작점인 ITC 건에서 조기 패소로 귀결되면 소환조사를 미룰 명분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2년 전부터 불거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갈등이 결말로 향하고 있다. 양사가 소송을 건 국내외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사진은 LG화학 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는 모습(왼)과 SK이노베이션 연구원이 배터리 셀을 들어보이는 모습. 사진/각 사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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