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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조선사 하도급 '갑질' 연내 해법 내놔야
2019-11-01 06:00:00 2019-11-01 06:00:00
“이 자리를 20대 국회 마지막 기회로 생각합니다. 4년간 계속해서 이 문제를 말하는 건 공정거래위원회를 믿고, 정부를 믿고, 여기 계신 국회의원을 믿고, 이 나라에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윤범석 전국조선해양플랜트 하도급대책위원장은 18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호소했다. “혈세를 투입한 정부는 지난 정부였지만, 이후 대우조선을 관리한 정부는 현재의 정부”라며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정부가 책임을 미루기 보단 해결에 나서줄 것도 촉구했다. 
 
윤 위원장이 지적한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2015년 저가·과다수주 후 이듬해 대금지급을 미뤄 대우조선 노동력의 70%를 담당하던 협력업체들을 고사시킨 사건이지만 지금껏 미결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삼영기계 기술탈취 의혹이 산자위 국감에서 불거졌다. 한영석 사장이 재판 중이라며 부인하는 입장만 견지하자 “결국 이런 식이다. 기술탈취하고 하염없이 시간 흘러가고, 재판 통해 김앤장 등 굴지의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탄식이 나왔다. 현대중공업 사건을 두고 한 말이지만, 느긋한 원청과 속 타는 협력사의 구도는 대우조선 건에도 꼭 들어맞는다. 이 구도는 삼성중공업이 공정위의 ‘갑질’ 조사 과정에서 행한 것으로 드러난 증거인멸 등 은폐 의혹으로도 입증된다.
 
조선3사의 하도급 갑질은 지난 몇 년간 조선업 위기 속 그 어려움을 전가하면서 더 악화했다. 긴급 투입된 혈세는 늘 그랬듯 하청업체까진 닿지 못했다. 대우조선 피해업체들은 4대 보험과 국세 연체로 국민연금·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23일 현대중공업의 기성 삭감 등으로 심리적 압박 끝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협력사 대표는 뇌사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삼성중공업 하청기업들도 일방적인 단가산정과 불공정계약, 그리고 이를 문제제기하면 가해지는 보복 피해를 호소한다. 
 
갑을병정의 최하층에 놓인 하청노동자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10월 ‘급여에서 원천징수해놓고 사라진 4대 보험료를 돌려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던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은 해결을 약속한 이낙연 총리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 17일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하청업체들이 4대 보험 체납 유예 제도를 악용해 발생한 피해지만, 도산해 받을 길이 없다. 임금체불에도 대출도, 신용카드 발급도 받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조선업 현장 전체 사망사고 84%를 차지하는 하청노동자 안전문제는 울산과 거제의 일상이 됐다, 
 
정부는 제조업 강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조선업을 육성하고 지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조 단위 적자를 내면 십 수 조원을 지원했고, 현대·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를 통한 경영정상화도 뒷받침했다. 그런 정책결정의 중요한 명분 중 하나는 파생산업과 고용창출이었다. 그러나 파생된 하청기업과 그 노동자들의 현주소는 정책실패에 다름 아니다. 조선3사 하도급 갑질 문제 해결에 법·정책입안자인 국회와 당·정·청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조선업 정상화가 중요한 정책목표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1위’의 역사를 함께 쓴 하청업체와 노동자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 장치 없인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공정위가 진행 중인 조선3사 불공정하도급거래 위반혐의는 이제 직권조사를 마치고 처벌 확정 심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더불어, 조선업 하도구조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기업들이 정책 혜택을 함께 나누고 상생을 배워 세계적 명성에 걸맞은 기업 노동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지원도 절실하다. 당정청과, 그 어느 때보다 ‘일 안한’ 20대 국회가 총선 준비에 선행할 또 한 가지 연말 과제가 여기에 있다. 
 
최서윤 산업1부 기자(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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