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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넘지 말아야 할 선
2019-06-03 06:00:00 2019-06-03 14:34:50
영화 '기생충'을 봤다. 무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만큼 모처럼 온가족이 영화관에 총출동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서면서 함께 간 어르신의 눈치를 살피며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우문이었다. 어르신은 잠깐의 침묵 끝에 '심란하다'는 현답을 내놨다.
 
인터넷상에서 살펴보니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는 양상이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논쟁인데, 이는 개인 취향의 문제이니 어찌보면 의견이 갈리는 게 당연하다. 다만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심란하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모습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는 계급 사회의 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배우 이선균이 맡은 배역이었다. 그가 맡은 박사장은 성공한 글로벌 IT기업인이자 상류 계층에 속한다. 부의 편중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면 부를 수대째 대물림하는 이른바 '재벌'을 인물로 내세워도 좋을텐데 봉준호 감독은 굳이 IT기업인을 전면에 드러냈다. 왜일까. 
 
자수성가한 기업인에 대해 우리 사회는 비교적 관대하다. 기술 혁신을 앞세워 성공한 IT기업인에게는 선구안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앞장서 개척했다는 대의명분이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톱에 오른 사람들이 이 분야에는 상대적으로 많다. 가히 성공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게 마땅할 만한 요소들을 다수 갖춘 이들이 포진해 있는 분야다.  
 
그런데 영화 속 IT기업인에게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모종의 특성이 지배한다. 바로 남보다 내가 탁월하다는 우월감이다. 성공한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그에게 자리 잡은 우월감. 스마트한 겉모습에 가려져 있지만 영화 속 박사장은 누구보다 빠르게 인간 관계에서 위와 아래를 가른다. 영화 속에선 상징적으로 간단히 표현되긴 했지만 그는 계층을 구분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주체로 기능한다.  
 
아마도 감독은 IT기업인을 직접 겨냥한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직업분야라는 점에서 일부러 이 분야 기업가를 대표 인물로 상정한 듯 싶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제 아무리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남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이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우회적이긴 하나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사람을 내가 사용해야 할 도구로 취급하는 감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는 인식이다.
 
비록 유머 코드로 버무려졌긴 하지만 영화 속 박사장 집에서 일하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 모두는 실제 능력이 출중하게 그려진다. 그들에게 만약 일할 기회가 제 때, 제대로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구산업과 신산업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 안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요즘, 이 영화는 마치 사람을 대하는 기본 태도만큼은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제 아무리 성숙한 사회가 강조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기회의 평등은 완전한 모습으로 달성되기 힘들다는 점을 기억하자.
 
김나볏 중기IT부장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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