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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홍보 열올린 중기부, 위기엔 뒷짐…제2·제3의 을지OB베어 나올라
임대차보호법 개정, 업력 오래된 백년가게엔 무용지물…탁상행정 비판 피하기 어려워
"사회적 협약 등 실질적 지원책 추진 나서야"
2019-05-16 16:22:12 2019-05-16 16:32:52
[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실제적인 지원에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백년가게 1호점으로 선정한 을지OB베어가 건물 임대계약 연장 문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중기부는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소상공인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력이 30년 이상 된 백년가게는 개정법을 적용받지 못해 제2, 제3의 을지OB베어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기부에서 백년가게 1호점으로 선정한 을지OB베어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을지OB베어는 '노가리 1마리 1000원'으로 상징되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 가게다. 
 
중기부는 지난해 8월 업력이 30년 이상인 도소매·음식 업체 중 혁신성이 검증된 16개 점포를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40여년간 노가리 골목의 터주대감으로 자리잡은 을지OB베어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을지OB베어는 백년가게로 선정된 지 1년도 안돼 사업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2013년 5년 재계약한 건물 임대계약 만료가 지난해 10월이었으나 연장이 불발된 탓이다. 건물주는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했다며 을지OB베어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을지OB베어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지난해 6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백년가게 육성 방안. 사진/뉴스토마토
 
앞서 중기부는 지난해 6월 홍보·마케팅, 금융지원, 체인화 등 경쟁력 향상과 역량 강화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백년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백년가게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라는 내용도 포함했다. 법무부와 협업해 상가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퇴거보상제를 마련하는 등 안정적인 임차 환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법 개정이 이뤄져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2항에서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 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을지OB베어가 개정된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2, 제3의 을지OB베어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임차기간이 10년을 넘어서면 개정법에서 보장한 계약갱신 요구권이 없어 다른 백년가게들 역시 언제든 같은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중기부가 막상 백년가게를 선정해 놓고 법 개정 등 제대로 된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중기부는 을지OB베어 같은 사례가 속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뉴스토마토>가 지난 15일 백년가게의 임차 현황을 문의하자 "백년가게 선정에서 임차 여부는 고려 사항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개인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문제는 부처 차원에서 개입하는 게 맞지 않을 뿐더러, 지난해 법 개정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한 상태에서 특정 가게를 지원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년가게는 장소를 옮기더라도 지위는 박탈되지 않기 때문에 점포를 옮기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을지OB베어처럼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는 '노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시한다. 단순히 임차인 보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건물주에게 무조건 상생을 호소하기보다 백년가게로 지정되면 세재나 행정적 지원 혜택을 제공해 계약 연장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중기부가 적극 나서 백년가게를 공동체의 생활문화 유산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협의를 통해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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