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항 때문에 한국은 '대공황'
2016-06-23 10:27:47 2016-06-23 10:27:47
우리 사회의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2003년 대한민국은 전북 부안발 혼란에 휩싸였다. 당시 부안군수는 위도에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선언했다. 방폐장 유치를 통해 정부로부터 갖가지 혜택을 받아 침체된 지역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발전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충분한 소통 과정없이 시도된 유치 작업은 주민들과 자치단체 사이 그리고 주민과 주민 사이에 엄청난 갈등을 유발했다. 군수가 주민들에게 감금돼 폭행당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초래되었고 관련된 주민 100여명 이상이 사법처리되는 낭패를 당했다.
 
주민들은 방사성폐기물이라는 위험물질을 지역 내에 반입하는 상황에 격앙된 분위기였다. 과학적으로 거의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을 아무리 해도 불신의 벽이 깊어진 후였다.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역의 상처는 깊다고 전해진다. 결국 2005년에 와서야 경북 경주시가 주민투표를 통해 방폐장 후보지로 선택되었다. 충분한 홍보 기간을 두었고 유치에 대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게끔 만든 점도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까스로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
 
정부의 신공항 계획이 10년 넘게 돌고 돌아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론으로 경착륙했다. 밀양과 가덕도가 한치의 물러남이 없는 혈전을 치렀지만 정부는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부안 방폐장과 비슷한 2003년에 첫 논의가 이루어진 신공항 계획이지만 결과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혐오시설 유치에는 그나마 이성적인 대응이라도 가능했지만 10조원대의 황금알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이성마저 상실해 버렸다. 대통령 선거때마다 유세장에서 신공항 프로젝트를 미끼로 내걸었고 유권자인 주민들의 마음을 미혹시켰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이니 무조건 유치해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으로 둔갑해 버렸다.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 시나리오를 선택함으로써 지역 분열을 막고 6조원 정도의 예산을 절감했다는 자평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상의 재개항, 즉 신공항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하긴 쉽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5년 전 경제적 실효성이 없다는 한국 용역회사의 분석에 따라야 했고 선거에 꽃놀이패로 들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했다.
 
임기내에 민감한 결정을 하지 않으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 현상으로도 읽혀진다. 김해공항 확장으로의 회귀가 마치 신의 한수인 듯 설명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신공항 논란으로 잃었다.
 
한국은 정신적 대공황 상태이다. 우선 정부와 국민,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지역 불신의 골은 더 깊어졌다. 더 이상 대통령 후보의 약속을, 여의도 정치권의 맹세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게 생겼다. 신공항 유치가 지역을 위한 선물이라는 말에 주민들은 여지없이 농락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발표한 ‘각국 정부의 신뢰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신뢰도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중에 중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다. 국민 10명 중 7명 가까이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신공항 논란으로 더욱 바닥에 떨어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얼마나 추스를지가 걱정스럽다.
 
첨예한 지역 갈등은 더욱 문제다. 영호남 대결로도 모자라서 신공항 입지를 놓고 TK와 PK로 나누어져 싸우는 모습은 더 꼴불견이다. 밀양이든 가덕도든 대한민국 땅 아닌가. 방폐장이나 화장장 같은 혐오시설은 서로 내 지역에 오지 말라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의식이 절대적이다. 신공항 같은 로또사업은 반드시 내 지역으로 가져와야겠다는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의식 일색이다. 집단 이기주의만 눈에 보일뿐 다른 지역과 상생하겠다는 이타주의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사회적 갈등 이슈에 대해 조정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주민들을 깊은 감정적 대결장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우리 지역에 유치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사퇴, 삭발 등의 극단적 방법 선택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전체 국민들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방폐장 선정 과정에서 배울 수 있듯 주민들의 상충하는 갈등과 선택되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이해를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정책적 실마리가 있어야 한다. 가정이긴 하지만 차라리 밀양과 가덕도 모두에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면 두 지역 주민 모두가 만족할까. 대한민국은 행복할까. 공항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은 정신적 대공황을 앓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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