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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말 못한다고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억울함 없어야"
문병길 서울시농아인협회 회장 인터뷰
“가장 시급한 복지는 교육, 장벽 너무 높아…농아인 전문대학 설립이 목표”
2016-04-27 06:00:00 2016-04-27 16:15:18
[뉴스토마토 박용준·조용훈기자] “국내 농아인들의 복지는 후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실제로 농아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인식을 못해서 아쉽습니다”
 
문병길(55) 서울시농아인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농아인들 복지 수준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시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선정한 서울시복지상 장애인 인권분야 대상자다. 문 회장은 2급 청각장애를 지닌 농아인으로 35만 농아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수십년 간 일해왔다. 특히 지난 2009년 서울시 농아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로는 줄곧 수화통역서비스 보편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농아인 복지와 관련해 농아인 특성화대학 설립을 위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농아인을 위한 시설을 건립하려해도 정부나 지자체, 기업이 함께 움직여주지 않으면 힘든 게 현실이다.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농아인의 불편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탁상공론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화언어 기본법’만 하더라도 가볍지 않은 성과이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문 회장은 정부의 농아인복지 정책이 적당히 밥만 먹고 굶지 않을 정도의 시혜적인 수준을 넘어서 농아인 스스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회장을 만나 더 나은 농아인의 삶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수화통역은 우지희 서울시농아인협회 과장과 신윤정 대리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 22일 오전 문병길 서울시농아인협회 회장이 서울시 서대문구 엘림넷 빌딩 3층 서울시농아인협회 집무실에서 수화로 '인권'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스스로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농아인들을 위해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은 혈연과 학연, 지연으로 크고 작은 집단을 형성한다. 농아인들 역시 수화라는 동일한 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모인다. 농아인은 서로의 수화와 얼굴 표정을 확인하며 소통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대화 방식이다. 농아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문화와 특성을 이 사회에 알려 농아인이 지닌 욕구와 필요한 지원을 말하고 싶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에 비해 청각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다. 억울해도 말하지 못해서 피해가자 가해자로 바뀌는 억울함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 농아인들의 복지 수준은 어떤가.
 
분명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분들도 나름의 불편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농아인을 무시하고 어떨 때는 외국인을 대하는 것보다 어려워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같은 장애인 관련 법들도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 중심으로, 농아인은 굉장히 뒤처져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장애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발화할 수 있지만, 우리는 소통되지 않는 유일한 장애를 갖고 있다. 서울에만 공식 4만5000여명, 비공식 6만여명의 농아인이 있지만, 농아인은 신체가 자유롭다는 이유 때문에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 같은 서비스도 24시간 제공받지 못한다.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이 집을 나서는 순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나. 본인 스스로가 농아인이 아니라면 이 사회에서 농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없다. 농아인들이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자격을 가져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동일한 자격을 가진 사람을 뽑을 경우에 농아인을 뽑지 않기 때문에 농아인들이 사회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경우는 극소수로, 대부분 몸으로 일하고 소통이 필요 없는 건축물 해체 같은 곳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수준이다.
 
외국 선진국은 농아인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복지수준을 갖췄나.
 
우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이나 미국을 가보면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뒤쳐져 있지 않은데 복지 수준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진짜 후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나라들은 경제력도 뛰어나지만 장애인의 특수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사회적 비용 지원은 물론 법률이나 의료 등 전문 분야에서도 통역이 불편없이 제공되고 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거나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해도 수화통역사가 있어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미국 청각장애인 변호사 12명을 위한 대법원 출입 승인식에서도 수화통역사 2명이 배정됐다.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미리 배운 수화로 “여러분의 대법원 변론 재정신청이 승인됐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은 어떤 장소에서나 청각장애인인 농아인들 배려한다. 미국의 경우 수화를 학교에서 공통과목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농아인들이 다니는데도 불편함이 하나도 없을 농아인 대학교가 있다.
 
농아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복지는 무엇인가.
 
교육이다. 농아인도 꿈이 있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자기가 배우고 싶은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만큼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농아인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국내에 농아인들을 위한 대학교는 천안에 위치한 나사렛대학교 수화통역학과와 경기도 평택의 재활복지대학교 수화통역과 2곳뿐이다. 그 이외에는 통역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꿈을 꾸기도 전에 꿈을 접어야 하는 게 국내 농아인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1876년에 세워진 갈로뎃 대학교(Gallaudet University)와 로체스터 공대(Rochester  University) 등 세계적인 장애인 특성화 대학이 존재한다. 농아인에게 단지 수화통역 말고 다른 분야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 결국에는 국내에도 농아인을 위한 전문대학교가 설립돼야 한다.
 
“전국 농아인 35만명…
언어 소통 어렵지만
잠재력·능력 충분해” 
 
서울수화전문교육원을 설립했다. 운영 성과와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연간 5000명 정도가 수강을 하고 있다. 매달 초 개강하는 한 달 과정인데도 서울시민을 비롯해 직장인, 학생 등 참여율이 높다. 특히 수화통역사 자격증 취득자 중 서울수화전문교육원 출신이 30~50% 정도로 합격자 배출률도 높다. 그만큼 교육과정이 알차고 강사진도 우수하다. 아쉬운 점은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수료해도 전문학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는 우선적으로 국·공립대학과 시립대학교 측에 수화통역학과와 수화교육학과, 수화연구학과 등을 설치해달라고 건의하는 상황이다. 영어수업을 교과목으로 지정한 것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최소한의 수화는 배울 수 있도록 교과목으로 선정되고 제도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는 농아인이 다닐 수 있는 국내 전문대학교를 설립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12월 31일 수화언어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 농아인들의 오랜 염원이 8년만에 이뤄져 너무 기뻤다. 오는 8월4일 수화언어기본법이 시행되면 수화는 한국어와 동일한 공용 언어 지위를 갖는다. 아직까지는 세부 시행령이나 규칙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남아있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이번 법안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에 수화과목 신설 내용이 빠진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수화를 쓰는데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수화를 할 수 있는 학생도 없고 장애인 인식 개선으로 접근하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미약하다. 한국은 유독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늦다. 밥을 먹고 굶지 않는 시혜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데 실제로 농아인 분들은 삶을 살아야 하고 인생을 누려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구성원으로 서야 하는데 신속하게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 그게 가장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총선이 얼마 전에 끝났다.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나. 
 
투표소에 수화통역사가가 배치된다든가 하는 점은 과거에 비해서 분명 개선된 점이다. 하지만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수화로 제공받는 기회는 아직도 부족하다. 후보자 토론회라던지 연설회 등은 수화로 제공되지만 모든 후보자들의 정보와 공약 등을 한국수화언어로 제공받고 싶다. 농아인은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화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의 목소리가 정부에 전달되기는 힘들다. 이번 20대 총선만 보아도 실질적인 장애인 비례대표는 전무하다. 전에 2~3명 정도의 장애인 비례대표도 있었지만 농아인이 포함된 적은 없었다. 그렇다보니 우리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존재한다. 앞으로는 농아인 비례대표가 나와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는 특별하게 수화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수화통역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정보를 받을 때 귀동냥도 할 수 없어 반드시 누군가는 모든 순간 숨 쉬는 것까지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은 활동 보조인이 있는데 우리 농아인분들은 그런 서비스가 없이 필요할 때만 1~2시간 예약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다보니 수화통역하는 나머지 일상시간에 저는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시민들도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전국에 농아인들이 35만명이나 돼 결코 적지 않은데 이러한 관심이 모여야 우리 농아인들이 더 많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돼지만, 대신 잘 걷고 손을 잘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과 능력이 충분하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50일 앞둔 지난 2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장애인단체 대표자 간담회에서 서울시농아인협의회 문병길 대표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박용준·조용훈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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