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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북한음식 전문가 윤종철씨 "남한에서 얻은 만큼 베풀며 살아갈 겁니다"
"사기 당해 사람·돈 모두 잃기도…음식으로 소통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서"
“탈북자, 남한에 바라기만 하면 안돼…과한 욕심 버리고 자신에 맞는 길 찾아야"
2015-11-25 06:00:00 2015-11-30 16:09:19
"'북한의 맛'을 잊지 않기 위해 외식은 물론 간식도 꺼리고 있습니다. 욕심 부리기보다 고집을 갖고 제대로 된 북한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싶습니다." '북한음식 전문 요리사' 윤종철(58)씨. 종편 연예프로그램으로 얼굴을 처음 알렸지만 사실 그는 평양 옥류관 출신의 엘리트 요리사다. 옥류관은 세계 10대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윤씨는 그곳에서 교육받은 뒤 군 장성 식당에서 10년간 요리사로 일했다. 북한 내 여러 지역 출신 장성들의 입맛을 맞추다보니 자연히 북한의 모든 음식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북한음식전문점'을 냈다. 1998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2000년 한국에 정착한지 15년 만이다. 요리용 칼을 들던 손으로 건설현장 일용직부터 각종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일이 없었다. 다단계에 혹했다가 낭패를 봤는가 하면 사기도 몇 차례 당해 사람도 돈도 다 잃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소식을 알 수 없는 북에 둔 아내와 탈북 과정에서 잡혀 잘못된 딸 생각에 설움과 절망으로 괴로워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요리였다.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윤씨는 이를 '운명'이요, 남한과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북한음식에 대한 그의 집념과 자존심이 엿보였다. '북한음식 전문 요리사' 윤씨를 만나 북한 음식과 남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북한음식 전문가' 윤종철 요리사. 사진/박용준 기자
 
-요리사를 직업으로 택한 계기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이다. 사실 할아버지가 요리사였지만 북한 사회에서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18살에 군대를 갔는데 할아버지 경력이 있어서인지 한 번도 요리를 해보지 않은 나를 평양 옥류관으로 배치했다.
평양 옥류관은 세계 10대 맛집으로 선정될 정도로 옥류관에서 배우고 일했다는 자체가 요리사 수준이 일반 식당하고는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이후 10년간 장성급 전용 식당 주방에서 일하면서 여러 장성들 입맛에 맞는 요리들을 만들다 보니 북한 여러 지역의 음식을 모두 꿰뚫게 됐다. 제대 후에도 요리사로 사는 길을 피하려고 회령경공업단과대학에서 발효를 배워 사이다, 된장, 간장 등 발효식품을 만들거나 강의를 나갔다. 요리는 가끔 중앙에서 행사가 있어 초청할 때나 손에 잡아 녹슬지 않았을 뿐이다.
 
-탈북 과정 얘기를 듣고 싶다.
 
▲어렸을 때는 북한이 굉장히 잘 사는 나라인지 알았는데 막상 사회를 나와 보니 너무 살기 막막했다. 옥수수 먹는 것도 귀하게 생각할 정도로. 딸이 하나 생겼는데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돈을 조금 벌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그런데 중국을 가서 보니 북한보다 못 사는 줄 알았던 남한이 중국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사는 것을 알게됐고 충격을 받았다. ‘나도 같은 민족인데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한국행을 결심했다. 혼자 탈북하다 보니 북한에 아내와 딸을 두고 왔는데 내겐 너무 가슴 아픈 일로 남았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탈북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고, 딸은 남한에 온 이후에 데려오려 했는데 탈북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감옥에 있던 도중에 잘못됐다.
 
-남한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남한에 오면 꽃다발 걸어주고 환영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간첩인지 아닌지 조사도 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가만히 혼자 생각을 해보니 나 같아도 북한 사회에 남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들을 그렇게 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됐고, 말투는 달라도 대화는 통하는 남한 사회에 적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북한과 달리 자유라는 것이 주어지고, 일 잘하면 칭찬도 해주고 돈도 더 주는 남한 사회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요리 말곤 다른 기술이나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건설현장 일용직부터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다. 한때는 다단계에 혹해 잠깐 빠지기도 하고 사기도 몇 번 당하면서 사람도 잃고 돈도 잃어봤다. 그러다 2년 전 이호경 호야쿡스 사장을 만난 뒤 ‘음식으로 소통하자’는 이 사장의 생각을 듣고 다시 칼을 잡았다. 남한은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남다르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요리라니 운명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종철 요리사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북한전문 음식점 '동무밥상' 조리실에서 면을 삶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남한과 북한 음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

▲북한에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딱 소리 난다"고 얘기하는데 북한 음식은 슴슴(심심하다, 싱겁다의 북한말)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간이 세서 맵고 달고 짠 맛이 강한 남한 음식과는 다르다. 남한 음식은 양념 맛이 강하고 부재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원 재료의 맛과 특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남한에 있는 북한 음식점은 흉내내기 수준에 그친 곳이 대부분으로 북한에서 먹던 맛과는 차이가 크다. 몇 곳은 배울 점이 있을까 해서 허드렛일부터 일하기도 했지만 다른 배울 점이 없어 오래 일하지 않고 모두 그만뒀다.
지금도 거의 모든 북한 요리를 할 수 있다. 그 맛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맛을 잊지 않기 위해 외식은 물론이고 떡볶이 같은 간식조차 꺼리고 있다.
 
-가게 오픈 반응은 어떤가.
 
▲정확히 말하면 ‘동무밥상’은 내 가게가 아니라 2년 전부터 함께한 호야쿡스에 소속된 가게로 내가 맡아 아내와 함께 활동할 뿐이다. 호야쿡스는 양식, 한식, 북한식 등 다양한 글로벌 요리를 가르치고 서로 교류하는 요리 스튜디오로 나도 강사 중 한 명으로 매주 북한요리를 강의하고 있다. 올 4월부터 호야쿡스 안에 팝업 스토어 방식으로 ‘동무식당’을 운영해보면서 메뉴를 선보이니 손님들 반응이 괜찮아 지난 13일 정식으로 가게를 문 열었다. 이제 10일 남짓 됐는데 아무런 광고나 홍보 없이도 사람들이 제법 찾으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손님 중에 북한에 연을 둔 사람들은 그리워하던 맛이 난다고 얘기해주시고 북한음식을 처음 접하던 손님들도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다며 따로 포장해 가시는 경우도 제법 된다.
가게 크기는 크지 않지만 가게 크기에 욕심 부리기보다 음식에 누구보다 고집을 갖고 제대로 된 북한 음식을 알리는데 힘쓰고 싶다. 순대 같은 경우도 당면으로 채워진 남한 순대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찹쌀, 돼지머리 고기, 야채 등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한 번 맛보신 분들은 다들 만족한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얘길 해주는 보람에 피곤한 줄 모르고 일하고 있다.
 
-'동무밥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무엇인가.
 
▲북한냉면 같은 경우에는 비법육수와 직접 반죽한 메밀면으로 만들며 가장 내세울만한 메뉴다. 메밀은 몸 안에 있는 나쁜 것을 내쫓는 특성이 있고, 무를 같이 써서 메밀의 독성을 잡는 등 고명 하나하나가 음식의 맛과 영양을 위해 있는 것들이다. 무조건 1차원적으로 짜고, 달고, 맵고 이런 맛들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왜 이 재료를 사용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북한식대로 꿩을 구할 수 없어 육수는 비슷하게 따로 개발했지만 다른 부분은 북한에서 먹는 냉면과 거의 똑같다.
냉면 같은 경우엔 북한냉면에 대한 오해가 가장 심한 음식이다. 간이 밍밍하면 평양냉면, 아니면 함흥냉면 이런 분류를 하든데 사실 북한에선 함흥은 녹말, 평양은 메밀을 면 재료로 많이 사용할 뿐이지 냉면 자체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남한에서 밍밍하다는 평양냉면조차 평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음식으로 육수 자체가 북한 평양냉면이 남한 평양냉면보다 염도가 낮다.
동무밥상은 적어도 북한을 가봤냐, 북한 음식을 먹어봤냐, 제대로 만들어봤냐 이런 점에서 다른 북한 음식점과는 차이가 크다. 앞으로 냉면철이 되면 가게 앞부터 지하철 출입구까지 우리집 북한냉면을 맛보기 위한 줄이 늘어설 것으로 자신한다.
 
-남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다른 탈북자들을 위한 조언과 앞으로 계획은.
 
▲개별적으로 탈북자들 만나면 술도 사주고 얘기도 나누는데 대체적으로 너무 남한 사회에 바라는 것이 오산이다. 북한보다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회이지만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나도 욕심을 부리다 많은 실패를 했지만, 하루 세 끼부터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고 정착하는데 힘써야 한다. 무조건 탈북자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다. 그 보다는 각자 그들이 가진 생각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 맞게 길을 찾길 바란다. 나도 앞으로 독거노인들을 돕는 등 봉사하면서 남한 사회에서 내가 얻은 만큼 베풀 수 있는 일들을 찾을 계획이다. 앞으로 통일이 북한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벗어나길 소망한다. 그래야 남한 사람들도 일자리 걱정 없이 북한에서 일도 하면서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동무밥상 예약 문의
주소 :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길 10 1층
전화 : 02-326-3871
시간 :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이후, 월요일 휴무.
메뉴 : 북한냉면, 명태식해, 찹쌀순대 등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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