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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에 화려한 투자계획 내놓지만…30%는 '공수표'
30대그룹 최근 2년 투자계획 대비 집행률 전수조사
그룹별 상장 계열사 사업보고서 분석…첫 검증 시도
2015-09-02 07:00:00 2015-09-02 07:00:00
재벌 대기업들의 투자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재벌 그룹은 지난 2012년부터 매해 두 차례씩 정부와 간담회를 갖고 매머드급 투자를 발표, 낙수효과에 기반한 경제활성화 기여를 강조해 왔다. 이는 역으로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근거가 됐다. 
 
문제는 이행 여부에 있다. 정부는 물론 국회나 언론 차원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들 재벌 그룹의 투자 결과는 미궁에 빠졌다. 해당 그룹에 투자 이행 여부를 묻는다고 해도 대다수 그룹이 경영상의 비밀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답을 내놔도 국내외 투자, 설비 신·증설 및 연구개발조차 따지지 못할 정도로 구체적이지 못하다. 불투명한 기업공개의 현주소다.   
 
특히 투자 계획과 실제 이행률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입을 맞춘 듯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과 '재정 사정'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는 사이 3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710조원까지 불었다. 이중에서도 삼성, 현대차 등 5대 그룹의 유보금은 503조9378억원으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투자 대신 곳간 채우기에만 바쁜 재벌들의 실체다.
 
◇지난 2월11일 윤상직 산업통상부자원부 장관과 16개 주요 기업 사장단이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투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10대그룹 투자계획 대비 집행실적, 2013년 35.5조·2014년 28.5조 미달
 
취재팀이 지난 한 달 간 10대 그룹이 직간접적으로 밝힌 연간 투자계획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확인되는 상장 계열사들의 사업보고서 3년치를 분석한 결과, 당초 투자계획 대비 집행금액은 지난 2013년 기준 35조5311억원, 2014년은 28조5035억원이 모자랐다.
 
2013년의 경우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현대중공업·한진·한화 등 10개 그룹(한화 제외)이 약속한 투자금액은 121조3002억원이었던 데 반해, 실제 집행금액은 85조7691억원에 그쳤다. 또 2014년의 경우 투자계획을 따로 내놓지 않은 롯데·현대중공업·한화를 뺀 나머지 7개 그룹의 목표치는 108조559억원이었지만, 집행금액은 10개 그룹 모두 합쳐도 79조5524억원에 불과했다. 2013~2014년 투자계획의 평균 이행률은 해당연도 기준 각각 71.35%, 70.41%에 그쳤다. 투자계획의 30%가량은 집행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취재팀은 사업보고서에 나와있는 토지·건물·설비 등 유형자산과 영업권·특허권 등 무형자산 취득액을 전부 투자로 집계했다. 이마저도 국내외 투자가 구분되지 않아 정확한 용처를 추적하기 어렵다. 정부와 재계가 장담한 낙수효과를 검증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LG, 2013년 투자계획 대비 집행률 47.5%…10대그룹 중 꼴찌
 
지난 2013년 이행률이 가장 저조한 곳은 LG그룹이었다. 투자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5%로 집계됐다. LG가 당시 밝힌 투자계획은 20조원이었으나, 사업보고서상 투자 실적은 9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LG가 밝힌 투자 실적 15조5000억원과 비교해도 무려 4조5000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미집행된 금액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LG그룹이 투자계획을 발표한 2013년 초는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여서 주요 그룹들은 막판까지 정부 눈치를 보면서 경영계획 발표를 꺼렸고, 이후로도 공식발표는 드물었다. 반면 LG는 당시 10대 그룹 중 가장 먼저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정부에 점수를 따기 위해 애썼다. 이에 대해 LG그룹 관계자는 "경영환경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해묵은 답변을 내놨다. 그럼에도 대내외 경기의 불확실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치 않고 서둘러 투자계획을 과대포장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롯데그룹 역시 투자 이행률이 56.62%로 낙제점 수준이다. 당시 롯데는 국내외 6조8400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계획했으나, 사업보고서를 통해 집계된 투자액은 3조8730억원에 그쳤다. 3조원가량의 계획이 행방불명이다. 그룹이 집계한 투자액 6조5000억원과 비교해도 3400억원 모자란다. 
 
현대중공업도 이행률이 56.71%에 그쳤다. 당초 계획은 2조4000억원이었으나, 투자 실적은 1조3611억원으로, 1조원가량이 빈다. 현대중공업이 집계한 투자 실적 1조8000억원을 놓고 봐도 6000억원이나 계획과 달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작은 프로젝트들에 매년 지속 투자하다 보니 집행액이 분산됐다"고 해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수장인 GS그룹도 이행률이 63.43%에 그쳤다. 계획은 2조7000억원이었으나, 실적은 1조7127억원에 그쳐 1조원가량 차이가 났다. 사측 집계치도 2조원에 머물러 7000억원가량이 투자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68.33%를 기록하며 이행률 하위 5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의 당초 투자계획은 14조원가량이었으나, 실적은 9조5670억원에 그쳤다. 4조원가량이 숨었다. 그룹 집계치 13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1000억원이 비었다. 
 
◇삼성도 이행률이 70.8%…포스코, 나홀로 목표치 초과달성
 
투자 규모가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삼성그룹도 이행률이 70.8%에 그쳤다. 2013년 삼성이 밝힌 투자계획은 49조원이었으나, 집행액은 34조7020억원으로 14조원 이상이 파악되지 않는다. 삼성은 2013년부터 투자 집행 수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한다는 시장의 판단에 별 다른 반박을 내놓지 않고 있다.
 
SK그룹은 81.1%의 이행률을 보였다. 계획 16조원, 집행액 12조9764조원, 그룹 집계 13조원으로 나타났다. 계획에 3조원이 미달했다. 한진그룹은 당초 계획 대비 집행률이 87.91%(계획 2조3602억원, 집행액 2조750억원, 그룹 집계 2조6376억원)로 집계됐다.
 
반면 포스코그룹은 이행률 109.77%(계획 8조원, 집행액 8조7819억원, 그룹 집계 8조8000억원)로, 집행액이 계획보다 8000억원가량 초과했다.
 
한화그룹은 당시 김승연 회장의 재판을 이유로 따로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사업보고서에 나타난 집행액은 1조2200억원, 그룹 집계치는 1조3000억원이었다. SK·한진·포스코 등 3개 그룹은 취재팀과 사측 집계가 유사해 투자 실적이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파악되는 특징을 보였다.
 
이밖에 계획과 실적을 공개한 나머지 30대 그룹의 이행률도 대체로 60%대에 머물러 10대 그룹의 경우과 다르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은 계획이 2조4000억원이었으나, 집행액은 1조4500억원에 그쳐 1조원가량이 비었다. 그룹 자체 집계도 2조3000억원에 그쳐 1000억원가량 부족했다. 두산그룹의 경우 계획은 1조3000억원이었으나 집행액은 1조1000억원에 그쳤다. 두산은 그룹 자체 집계치 공개를 거부했다. LS그룹은 계획 6700억원, 집행액 4150억원, 그룹 집계치 6700억원으로 조사됐다. 
  
◇삼성·현대차·LG·한진, 2014년 이행률 60%대
 
지난해에도 10대 그룹의 투자계획은 집행 실적과 차이가 컸다. 삼성그룹은 50조원 수준의 투자계획을 세웠으나 실제 집행액은 31조4170억원에 그쳤다. 이행률은 62.83%다. 현대차그룹도 1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사업보고서상 투자액은 8조9730억원으로, 이행률이 64.09%로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현대차는 자체 집계한 투자 집행액이 14조9000억원으로 계획 대비 9000억원이나 초과 투자했으나, 추가 집행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LG그룹은 16조5000억원 투자를 계획했으나 집행금액은 10조7700억원에 불과했다. 이행률은 65.27%. LG가 밝힌 자체 집계치는 15조9000억원이다. LG의 경우 전년 투자계획 20조원보다 4조원이나 축소된 계획을 내놓고도 달성하지 못했다. 한진그룹도 2조559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으나, 집행액은 1조3430억원으로 파악됐다. 이행률은 65.32%로, 한진이 밝힌 집행금액은 1조9954억원이다.
 
◇롯데·한화·현중, 투자계획조차 밝히지 못해
 
이밖에 롯데그룹은 투자계획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고, 집행액은 4조80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룹 집계치는 5조7000억원이다. 한화그룹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총수 부재를 이유로 투자계획을 비공개했고, 집행액은 9500억원, 그룹 집계치는 1조3000억원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 또한 투자계획을 비공개했다. 집행액은 1조5652억원, 그룹 집계치로는 1조8000억원이었다.
 
2013년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계획보다 집행액을 늘렸던 포스코그룹은 투자계획 6조5000억원, 집행액 4조8134억원로, 이행률 74.05%를 기록했다. 그룹 집계치는 5조4000억원으로, 이 역시 당초 계획보다 1조1000억원 모자란다. GS그룹은 3조원을 계획해 모두 달성했다고 밝혔으나, 취재팀 집계치(금융 계열사 등 제외)인 2조1440억원과 비교하면 8000억원 이상 모자랐다. 이행률은 71.46%다. SK그룹은 투자계획 16조원, 집행액 13조5688억원, 그룹 집계치 14조원으로, 이행률 84.8%를 보였다.
 
범위를 여타 하위 그룹으로 확대하면 신세계그룹은 2조6000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으나 집행액은 1조5000억원으로, 이행률 57.69%를 보였다. 신세계는 2조2400억원이 집행됐다고 밝혔다. LS그룹은 투자계획 6300억원, 집행액 3520억원, 그룹 집계치 5510억원으로, 이행률 55.87%로 나타났다.
 
자료/뉴스토마토
 
◇올해 투자계획, 수치상 '증액' 실제는 '하향'
 
올해의 경우 아예 투자계획을 줄이는 곳도 생겨났다. 10대 그룹만 보면 LG그룹은 지난 2013년 20조원에서 2014년 16조5000억원, 올해는 16조원으로 3년새 4조원이나 줄었다. 같은 기간 SK그룹도 16조원에서 14조원으로, 포스코그룹 역시 8조원에서 4조2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나머지 그룹들 역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수치를 내놨다. 삼성그룹은 51조원, 현대차그룹은 14조원, 롯데그룹 7조5000억원, GS그룹 3조원, 한진그룹은 상반기에 7169억원을 집행하고 하반기 2조1531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 2년간 투자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한화는 올해 3조2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이유로 투자계획을 비공개했다. 
 
올해 10대 그룹의 총 투자계획은 121조7700억원(현대중공업 제외)으로 전년(108조559억원)과 비교하면 13조7100억원(12.69%) 늘었지만, 지난해 투자계획을 밝히지 않은 곳이 롯데, 현대중공업, 한화 등 3개 그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계획치는 하향 조정됐다.
 
한편 취재팀은 30대 그룹을 전수 조사했으나, 자료 거부라는 벽은 넘지 못했다. 두산, 금호아시아나, 대림, 동부, 한국타이어, OCI, 효성, 영풍, KCC, 한라, 대성 등은 모두 투자 관련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총수 부재시 투자도 없다?
 
CJ그룹은 지난 2013년 투자계획 3조2000억원 중 사업보고서상 2조1000억원만 집행되고(이행률 65.62%), 지난해에도 2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으나 그 절반인 1조2000억원만 집행(이행률 50%)된 데 대해 총수 부재를 이유로 들었다. CJ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의사결정 지연으로 투자 차질이 빚어졌다"며 "총수 부재로 단기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해외시장 개척이나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과감한 투자 집행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말했다.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투자계획을 따로 밝히지 않은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 재판 건으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들 그룹은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총수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함으로써 직간접적 구명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로는 총수 1인에 대한 그룹 경영의 의존도를 보여준다. 총수가 있고 없고에 따라 그룹 경영계획이 좌우되는 황제경영의 이면이라는 지적이다.
 
이외에도 비공개에 대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연말에 실적과 계획의 괴리가 크면 부정공시가 될 수 있어 연초에 사업계획 발표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OCI 관계자는 태양광 사업의 전반적 업황 부진 탓"이라고 털어놨다. 동국제강의 경우 "전경련에 투자 자료를 제출하면서 개별 기업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영은 "땅을 사는 게 투자 개념이어서 특별한 계획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대성과 같이 "계열사간 분리경영 탓에 자료 집계가 어렵다"고 밝힌 곳도 있었다. KT의 경우, 별도기준으로는 최근 2년간 3조3125억원, 2조5141억원을 집행했고, 올해는 2조7000억원을 계획하는 등 투자 성향이 약화됐다. 
 
금호석유화학처럼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아 실적과 차이가 없다"고 전하는 기업도 있었다. 이 경우 투자금액이 매년 감소했다. 금호석화는 지난 2013년 715억원을 계획해 모두 달성하고, 지난해에는 1035억원을 계획대로 집행했으나, 올해는 투자계획 규모를 866억원으로 축소했다.
 
코오롱도 지난 2년간 각각 6700억원, 5100억원을 계획대로 집행했으나, 올해는 5151억원으로 투자계획을 2년 전보다 줄였다. 부영은 투자계획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2년간 2조6389억원, 2조1679억원 투자했고, 올해는 2조2501억원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도 같은 기간 4652억원, 3503억원을 집행하고, 올해는 대폭 감소한 1085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동국제강도 1700억원, 1000억원을 투자했으나, 올해는 500~1000억원 수준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병호·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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