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통계가 제 각각인 것은 사고 은폐와 개연성이 높다. 정부는 산재보험 처리된 것만 통계로 잡는다. 공상처리 등은 포함이 안 된다. 각 기업 하청지회도 집계가 부실한 측면이 있다."(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본지 26일자 '인터뷰' 中)
작업 중 사고로 죽어도, 부상과 직업병을 당해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산재 은폐는 원청의 규모와 작업장 상태를 가리지 않고 만연했다. 하지만 산재 처리를 주관하는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기업이 은폐에 앞장서고, 정부가 눈 감는 사이 '산재공화국'의 오명이 만들어졌다.
산재 은폐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청 노동자가 산재를 당해도 산재보험 신청을 안 하면 된다. 정부의 산재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산재보험만 집계되므로 사측이 공상처리(公傷處理: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는 대신 사측과 민법상 손해배상을 명목으로 합의하는 것)하거나, 노동자가 자비를 들여 치료한 것은 공식 산재에 포함되지 않는다.
취재팀이 5월 한 달 간 노동자 51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산재 은폐는 매우 광범위했다. 본인이나 동료의 산재 보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 질문(중복응답 허용)에 대해 '산재보험 처리'는 25.1%에 그쳤다. 반면 '공상처리'(49.4%)가 가장 많았고, '개인비용 부담'(23.0%) 비율도 높았다. '치료 없음'도 5.5%로 집계됐다.
산재 10건 중 7건 이상이 산재 보험을 거치지 않고 숨겨지는 셈인데,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故) 정범식씨 사례처럼 사측이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합의도 거부하는 경우까지 더하면 실제 산재 은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불치병을 얻은 근로자들도 회사에서 산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법정 투쟁을 해야만 했다. 고 황유미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킨 끝에야 삼성전자의 공식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기업이 산재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연구원은 "A기업은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고가 나면 원청에서 이를 다 파악하지만, 한 번도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며 "원청이 공개를 안 하는데 정부가 집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사협의회와 비슷한 형태의 산재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산재가 발생하면 노사 양측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사고 원인 규명, 보상방법 논의, 보상 후 작업장 복귀 등을 토의할 기구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은수미 의원은 "노사협의회와 같은 산재협의회를 구성해 사람 목숨이 오가는 산재에 관해서는 원·하청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측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