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이준영기자] 소공인(小工人)을 아시나요? 소상공인은 익숙해도 소공인은 어쩐지 낯설다. 그만큼 우리 사회와 정부의 관심권 밖에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소공인은 종업원 수 10인 미만의 제조업을 일컫는다. 업체수가 무려 27만개에 이르고, 우리 나라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나 된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 이상으로 우리 산업을 떠받치는 근간 구실을 하고 있지만, 신규인력 부족과 자금난, 수입산의 증가 등으로 업체숫자가 급속히 줄어드는 등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중기대통령을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불황의 파고를 넘고 있다. 대표적인 도심형 제조업인 금속가공업, 의류봉제업, 인쇄업, 귀금속가공업 등의 현장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공인들의 생생한 근로현장과 정부정책의 체감도, 개선사항을 짚어본다. 더불어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자체적인 움직임과 노력 등도 함께 조명한다. [편집자]
'찰그락 찰그락. 착착착착..찌익 찌익..'
안개 낀 5월의 오후 서울 문래동과 신도림 일대. 한적했다. 기계 소리만이 거리를 지배했다. 쇠방망이처럼 둔탁한 기계소리가 초여름 공기와 마구 뒤엉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주한 서울생활의 상징이자 호텔과 쇼핑몰이 한몸으로 이어진 첨단 복합시설로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른 신도림역. 1번 출구에서 5분가량 걸어 마을버스를 타고 10여분 지나면 같은 신도림동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래됨직한 2-3층 높이의 주택가가 즐비한 허름한 거리가 나온다.
◇신도림동 일대 주택가 안의 금속가공공장들. 뒤로 대형건물이 보인다(사진=이보라 기자)
화려한 신도림역 뒷편 주택가 한 켠 공장에서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기계 부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라 했다. 검게 그을리고, 금 간 벽으로 둘러싸인 회색 주택가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창고 같은 공간에서 두세 명, 많게는 서너 명 가량의 기술자들이 제품을 찍어내고 있다. 기계의 핸들을 열심히 돌리고, 제품을 깎고 다듬어 가공한다.
◇"우리는 '천수답'공장"
신도림 금속가공 단지는 10인 미만의 소규모 제조공장 600여개가 모여 있다. 인근 문래동 1200여개까지 합하면 이 일대는 2000여개의 소규모 제조공장이 자리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금속가공 제조단지다.
자동화 시스템, 산업기계, 머시닝, 선반, 밀링가공을 하는가 하면, 각종 기계를 제작하거나 수리도 한다. 대부분 철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1차 가공품을 가공한 완제품을 만들어 중소·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납품한다. 쉽게 말하면 중소기업에서 제품을 생산할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산업의 '허리'인 중소기업을 받치는 '근간'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기업만 산업이 아니에요. 우리가 만든 제품들이 중소·중견기업에 납품되고 그게 또 대기업으로 가요. 해외로까지 수출되죠.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있기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대기업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엄연한 1차 기간산업입니다."
이 일대에서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한 60대 사장은 문래동과 신도림동 일대의 금속가공 집적지는 산업을 떠받치는 기간산업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하지만 IMF 이후부터 점점 줄어드는 일감과 인력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경기부침은 심해졌고, 일감의 수준도 들쭉날쭉해졌다. 평균매출 역시 줄어든 지 오래다. 30-40년간 이 업계에 몸담았던 이들은 고도성장기였던,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었던 "80-90년대, IMF 이전이 좋았다"며 '한 때 잘나갔던 옛날'을 회고하며 지금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어본다.
"경기가 나빠지고 해외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일감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요. 일감이 줄어든다고 해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거래처에서 일감 주문이 나와야 제품 생산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마치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천수답'공장과도 같죠."
◇기계를 이용해 1차 가공품을 주문받은 모양대로 제조한다.(사진=이보라 기자)
이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평균 연령대는 대개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다. 30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젊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5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 업체 직원들의 나이대는 각각 30대 1명, 50대 2명, 60대 2명이었다. 이 공장을 '마지막 직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하는 70대 '할아버지' 직원이 있을 정도로 노동력노화는 이미 심각한 상태다.
새로 일하려는 일손이 없다는 것은 곧 기술과 노하우 전수가 끊긴다는 말이 된다. 10여년이 지나면 국내 금속가공업 분야의 대가 끊길 수도 있다. 자동화된 기계에 도면(값)을 입력해 대량으로 찍어낼 수도 있는 부품이 있는가 하면 소량생산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도면을 읽고 기계를 깎을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4년. 기술을 배우는 인력은커녕 일손 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훗날 걱정은 사치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 계속되다 보니 일감을 눈 앞에 두고도 주문을 더 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납기일을 못 지킬 바에야 할 수 있는 만큼의 주문만 받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이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생산현장에 취업하지 않는 것이 '부모 탓'이라 했다. 무조건 대학졸업에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부모들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고생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한탄을 늘어놓았다.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한 상황인데, 젊은이들은 (취업이 안 된다는 핑계로) 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젊은이들이 달려들기에 이 곳의 노동환경은 수월치 않아 보였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받는 신입의 월급이 150만원가량.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쇠 먼지 날리고,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기계소리가 공간을 장악하는 곳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것보다 최저임금을 받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편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자동화 기기에서 부품이 깎여진 후 나오는 찌꺼기.(사진=이보라 기자)
1차 가공품을 깎고 가공해야하는 탓에 300도가 넘는 열에 의해 깎여진 철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튄다. 천정의 페인트도 벗겨질 정도다. 화상도 잦다. 행여 옷 속으로라도 들어가면 런닝이 누렇게 타들어갈 정도다. 자재를 깎고 아무렇게나 튕겨져 나온 찌꺼기들은 대충 걷은 바짓단에서 떠날 줄 모른다. 열이 식은 뒤 털어내야 한다. 옷이 찢어질 수 있다. 옆에서 시늉을 내며 일을 거들던 기자도 옷 속으로 파편이 튀었는지 한참 옷 안을 들여다보기를 여러번. 철가루, 금속 가루가 공기 중에 날리다 보니, 목이 계속 따끔거리고 답답했다. 검정 먼지가 섞인 콧물이 나오기도 한다. 짬을 내 '믹스커피'로 답답한 목을 달래본다.
◇불합리한 '어음결제 관행'.. '폭탄' 안고 사는 심정
이들에게 '어음'은 생명줄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시한폭탄이 되기도 한다. 2-3차 업체들이 장기간 어음을 발행하는 관행이 굳어져 마음을 졸이며 만기 날짜를 기다려야 하는가하면, 현금이 급할 때 이른 바 '어음깡'으로 발 등의 불을 끄기도 한다. 마음 한 구석 항상 수심이 가득하다.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이라는 이름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업체 대표는 "원청업체로부터 거의 100퍼센트 어음을 받고 있다"며 "현금결제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한탄했다.
"예를 들어 3000만원어치를 납품한다 칩시다. (원청에서) 1000만원 현금결제에 2000만원 어음 거래하자거나 2500만원 현금으로 받을 것을 선택하라는 곳도 있어요. 현금이 너무 급한 상황이면 깎고서라도 받아야 겠죠."
이곳의 공장들은 3-4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영세업체들이 많다. 대개 규모가 작아 자본력도 약하다. 어음을 준 원청업체가 부도라도 나게 되면 연쇄부도로 언제든 문 닫을 각오는 해야 한다. 언제 망할지 모르다보니 1년마다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정산하는 '특이한' 문화도 생겨났다.
◇주문(부품)품을 만들기 전 1차 가공품이 쌓여있다. (사진=이보라 기자)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 정도는 거의 현금 결제와 비슷한 수준의 관행이 많이 자리 잡았지만, 그 아래 단계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구조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이다. 밑으로 갈수록 악독하고 지저분한 관행에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거래, 원·하청 관계의 납품단가 하락 압박 등에 대한 문제점을 깨닫고 제재에 나섰다지만, 이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거래업체가 도산하면서 이어진 어음부도로 10여년 전 사업체를 잃고 남의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하는 한 50대는 "예전부터 정부에서 거래관계에서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일을 겪은 적 있냐는 조사서를 보내오긴 했지만 그런 조사는 하나마나한 것"이라면서 "행여 사실대로 썼다가 거래 끊길 일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진정으로 대·중소기업의 불공정관행을 없애겠다고 나섰으면 이런 데에 정책을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분위기와 상관없이 이런 관행은 지난 몇 십년간 절대 고쳐지지 않고 있어요."
이들은 대부분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수요일을 제외하고 저녁 8시 반이 되어서야 퇴근한다. 12시 반부터 공장 바닥에서 무릎 절반 높이의 의자에 앉아 식사하고, 5시간 내내 서서 일하다가 다시 저녁을 먹는다. 공장 문을 닫고 점심먹으러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공장을 떠나지 못한단다.
"그래도…" 그가 말을 이었다. "딸 들은 다키워놨고, 10년 터울로 낳은 아들이 명문대에 들어갔어요.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탈이지만, 큰 벌이 아니라도 계속 일할 수 있어 다행이죠" 라고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재개발'
서울시는 지난해 문래동1가-4가 일대 준공업지역 27만9472㎡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2~3년 후부터는 철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래동이 재개발되면 신도림동 역시 이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정부가) '나가라' 하면 나가는 수밖에요. 청계천에서 문래동으로 밀려났듯이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는거죠."
◇신도림동 일대의 금속가공공장들.(사진=이보라 기자)
이들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쇼핑몰을 짓는 것을 왜 '재개발'이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아파트형 공장과 아파트, 공원 등을 한 데 조성해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보다 깨끗하게 아파트형 공장을 지으면 이미지 쇄신에도 도움이 돼 인력도 끌어들일 수 있고, 집적에 따른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묵묵히 자기 일만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몰라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듯 새 아파트 지어야 한다고 나가라 하면 우리는 또 힘없이 밀리고 말겠죠."
한 기업체 사장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득 쌓여가는 철 찌꺼기와 파편들처럼 이들의 근심 역시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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