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은 즐겁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희극이다.
아테네 공작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와의 결혼, 두 쌍의 젊은 연인들의 사랑,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의 불화, 여섯 명의 직공이 준비하는 소극 등 다채로운 이야기거리가 교차하며 삶과 사랑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풍자한다.
한 여름 밤의 숲 속에서 요정들의 장난으로 꿈처럼 얽히고설키는 사랑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만큼, 환상적인 숲 속 풍경과 요정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관극 포인트이다.
극단 수레무대는 원작의 설정을 크게 바꾸지 않는 대신, 코미디 전문극단의 장점을 살려 <한 여름 밤의 꿈> 무대를 만들었다.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 꾸려진 청록빛 무대는 신비로운 숲 속 분위기를 살렸고, 원형무대는 배우들의 동선을 입체적으로 만들며 쫓고 쫓기는 인물간 관계를 적절히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도 뒷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눈길을 끌었다. 스크린에 다양한 영상이 비치는데 이로 인해 무대는 극중 상황에 따라 아테네의 거리, 숲 속 요정들의 비밀스런 공간, 테세우스 공작의 연회장 등으로 변신한다.
특히 스크린에서 그림자극을 연출한 점이 돋보인다. 극단은 아테네의 공작인 테세우스와 테세우스의 약혼녀 히폴리타, 요정들을 스크린 뒤 그림자로 처리했다. 높은 지위의 인물과 환상세계에 속하는 요정을 모두 그림자로 표현한 것이다. 실루엣과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은 되려 신비감을 배가시켰다. 스크린 뒤에서 배우와 조명 사이 거리를 조정하며 그림자 크기를 수시로 변경한 점도 쏠쏠한 연극적 재미를 선사했다.
이 밖에 여섯 명의 직공들이 테세우스 공작의 결혼 축하연에서 상연하는 엉터리 소극에서도 희극적 표현이 두드러졌다. 운이 맞지 않아 웃음을 유발하는 원작의 극중극과는 달리, 극중극은 느린 정지화면처럼 진행되다 순식간에 결말로 치닫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연출됐다. 주연배우들이 일인이역을 맡아 극중극에 등장하도록 처리한 점도 숨은그림찾기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직공 중 한 명인 보텀이 연극을 연습하다 말고 숲 속에 들어가는 이유는 볼 일을 보기 위한 것으로 처리되는 등 소소한 유머가 눈에 띈다.
이 같은 설정은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지만, '꼬메디아 델 아르떼(배우의 즉흥연기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희극)'를 지향하는 극단 수레무대와 무척이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배우의 동작과 이중 배역 등 연기 요소를 적극 활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극의 리듬감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다른 요정들과 달리,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극의 맨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실물로 등장한다. 퍽은 '초라하고 어수룩한 연극이지만 한갓 꿈 같은 것'이라며 '너무 꾸짖지 말아 달라'고 관객에게 호소한다. 마치 관객몰이하는 사회자처럼 등장하는 퍽의 모습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퍽의 실물과 대사 덕분에 전체 공연, 극중극, 그리고 관극 중인 현실까지 모두 하나의 거대한 환상처럼 느껴지게 된다.
원작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김태용, 제작 극단 수레무대, 조명 양다정, 음향 권기훈, 영상 이은아, 무대 이은석, 오길석, 의상 류한정, 박미지, 출연 이은아(티타니아, 플루트 역), 조민기(오베론, 이지어스 역), 이희경(히폴리타, 헬레나, 스너그 역), 김현아(허미어, 스타우트 역), 마현진(라이샌더, 스타블링 역), 강전영(드미트리어스, 퀸스 역), 장민관(보텀 역), 박나리(퍽 역), 박재홍(티시어스 역), 오는 24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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