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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놀음에 무너진 경제①)'꼼수' 물가 2%..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어이없는 물가지수 개편..인하 효과 품목 입맛대로 골라 편입
물가변동 영향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 왜곡현상 심화
2012-12-13 06:00:00 2012-12-13 08:31:20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방향이 정부 중심의 통계를 기반으로 결정되면서 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에 국민들은 아우성이지만, 정책당국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통계를 근거로 '선방', '선전', '대박' 등의 찬사를 동원해 가며 다른 나라들보다는 낫다고 자위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통계의 오류에 따른 정책실패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 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니계수와 소득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중산층 비율 등 소득불평등 지표가 모두 개선됐고, 물가와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도 큰 폭으로 하락해 다른 나라보다 선전했다"
 
주무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의 최근 '공식발언'이다.
 
IMF때보다 더하다는 서민들의 실질 체감경기와 상반되는 평가다. 이런 정부의 자신감은 실제로 매우 양호한 각종 지표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특히 물가의 경우 최근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대 초반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2.1%의 물가상승률을 전망하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해 월간 물가상승률을 보면 올 7월에는 1.5%로 1%대에 진입했고, 8월에는 12년만에 최저치인 1.2%까지 물가상승이 억제됐다. 9월과 10월에 2%대를 보였던 물가상승률은 11월에 다시 1.6%로 안정세를 나타냈다.
 
문제는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와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올 여름 1%대 저물가가 계속되던 기간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는 태풍 등의 영향으로 50~100% 수준으로 폭등했다. 지표가 모든 것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박재완 장관 역시 "일부 지표는 서민 체감도와 차이가 큰 편"이라고 언급할 정도지만, 이미 실제와의 격차가 커진 지표들이 또다른 엉뚱한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 '꼼수' 그리고 또 '꼼수'
 
낮은 물가상승률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체감물가와의 격차가 크다는 것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꼼수' 동원이 통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장 큰 '꼼수'로 지적되는 것은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물가지수 개편이다.
 
정부는 당시 국제금값 급등으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던 금반지를 물가조사품목에서 아예 제외하는 등 21개 품목을 조사대상에서 탈락시키고, 대신 스마트폰 이용료와 삼각김밥, 떡볶이, 애완동물이용료 등 43개 품목을 추가했다.
 
국민들의 소비경향 변화에 따라 지수에서 제외 할 것은 제외하고, 추가할 것은 추가하는 것은 정확한 통계작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품목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물가를 낮추는데 주로 이용됐다는 점은 '꼼수' 의혹을 더하고 있다.
 
금반지의 경우 해당 품목 하나가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것 만으로 물가상승률 0.25%의 인하효과가 발생했으며, 일부 조사대상 품목의 규격은 1인가구 증가 등을 반영한다며 소형으로 대체하면서 전체적으로 지수개편으로만 0.4%포인트나 상승률을 억제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특히 신규로 편입된 스마트폰 이용료는 물가반영 가중치가 상위 10위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정부 입장에선 물가안정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 지수개편 직전에 통신사들이 기본료를 인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1월부터 11월까지 스마트폰 이용료는 지난해보다 월평균 1.4%가 내렸다. 특히 스마트폰 이용료 조사에서 국민들에게 실제 비용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는 스마트폰 기기가격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통계와 실제의 괴리를 크게 하고 있다.
 
이밖에 EU,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효과가 발휘될 수밖에 없는 수입자동차도 지수개편 때 조사대상으로 신규 포함했다.
 
민간소비지출에서 비중이 큰 생명보험료가 지수개편 당시 포함되지 않은 점도 '꼼수'로 지적된다.
 
당시 한국은행이 생명보험료의 물가지수 포함을 권고했고, 통계청 내부에서도 생명보험료의 지수 포함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지수개편을 최종결정한 국가통계위원회는 생명보험료를 제외시켰다.
 
이와 관련 국가통계위원회 결정 3일 전 통계청장이 대형 보험사 대표들과 식사자리를 가진 것이 국정감사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보육료와 학교급식비가 상당한 비중으로 물가지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보육료와 학교급식비는 0.6~0.8%포인트까지 물가에 영향을 끼친다.
 
지수개편 당시 행정안전부가 이미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급식비를 조사대상 품목에서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변경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가중치만 조금 변경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실제 가계가 지출하지 않은 학교급식비가 물가지수를 끌어내리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수개편의 뒷끝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은 "의혹투성이의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으로 작년말에만 0.4%포인트의 물가인하효과가 있는 것처럼 나타났다"면서 "0.4%포인트가 적어보이지만, 물가인상률과 연동돼 있는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 물가 왜곡이 거시경제의 왜곡으로
 
홍종학 의원의 지적처럼 물가변동이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소비자 물가가 내려갔다는 의미에 더해 다양한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에 대한 영향력이다.
 
한은은 물가가 안정되면 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이 풀리게 하고,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려 돈을 끌어 모은다.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 소비를 조절하고, 결과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3.25%까지 올랐던 기준금리를 차츰 인하해 올해 들어 2.75%까지 떨어뜨렸다. 물가가 지표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물가는 바늘과 실의 관계다. KDI가 지난달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에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해 경기부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것도 내년 2%대 초반의 안정적인 물가전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물가지표가 진실되지 못했다면 통화정책 자체가 어긋나게 되는 셈이다.
 
물가는 실질성장률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장률에서 물가상승부분을 제거한 실질성장률은 물가가 낮을수록 높아진다. 낮은 물가상승률은 우리 경제가 성장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물가지표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지급기준과 연동돼 연금액수도 변화시킨다.
 
2011년 물가상승률이 지수개편을 통해 4.4%에서 4.0%로 낮아지면서, 0.4%포인트의 물가상승률 차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약 476억원의 국민연금이 덜 지급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도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왜곡된 지표들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피상적인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도 체감물가에 근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내년에도 그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농산물 수급관리, 석유제품 구조조정, 공공요금 산정기준 변경 등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안정노력 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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