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가나에서 발전소 사업을 진행하던 한국전력기술 관계자들이 현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무공무원에게 5만달러를 건넨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1심은 세금 문제와 국제상거래 사이의 관련성이 부족하다며 국제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조세 문제 역시 해외사업의 비용과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시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재판장 소병진)는 지난달 19일 업무상횡령과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전력기술 관계자 A씨 등 5명에 대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사건은 2013년 가나 발전소 사업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가나 국세당국은 사업과 관련한 거래에 36만6600달러 상당의 원천징수세를 부과하려 했습니다. 회사 측은 세금이 그대로 부과될 경우 사업 손실이 커질 것으로 보고, 이를 줄일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나 세무조사관에게 건넬 5만달러가 마련됐습니다. 회사 자금 5만5000달러를 정상적인 세무자문 비용인 것처럼 처리하고, 관련 청구서 작성일도 세무조사가 시작되기 이전으로 소급했습니다. 돈이 현지 계좌로 송금된 뒤에는 회사 관계자가 현지 직원에게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돈을 인출했느냐", "왜 아직 지급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 전달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후 2013년 12월2일 현지 은행에서 5만5000달러가 여러 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됐습니다. 한 회사 관계자는 재판에서 상급자로부터 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직접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 가나 시내 한 광장에서 현지 직원이 세무조사관에게 5만달러를 건네는 모습을 확인한 뒤 이를 보고했다고 진술했습니다.
1·2심 판단이 갈린 핵심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건넨 돈이 국제뇌물방지법상 '국제상거래와 관련한 뇌물'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1심은 세금 문제가 해외 사업계약의 체결이나 이행 자체와 직접 연결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제뇌물 혐의를 무죄로 봤습니다.
반면 항소심은 국제상거래를 입찰이나 계약 수주·갱신·이행에만 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해외 사업자의 경쟁상 지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허가나 조세, 각종 규제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특히 세금이 줄어들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사업비용과 손실도 감소하는 만큼, 세금 감면은 가나 사업의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제적 이익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가나 세무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세금 부담을 줄이는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 금품을 제공했고, 이러한 행위가 국제상거래와도 관련돼 있다고 봐 국제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앞서 OECD 뇌물방지작업반은 2018년 한국의 뇌물방지협약 이행평가 보고서에서 이 사건을 해외뇌물 수사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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