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이어서 못 믿는다?…법원이 색동원 피해자 진술 인정한 이유
유도 가능성 줄인 NICHD 면담…개방형 질문으로 자발적 진술
법원, 구체적 묘사·법정 진술·진술분석 등 종합해 “신빙성 있다”
2026-09-08 16:04:06 2026-09-08 16:15:12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합니다. 제가 틀리게 말하면 고쳐주세요.”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색동원 시설장 1심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지=뉴시스)
 
색동원 성폭력 사건의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은 조사에 앞서 이 같은 ‘진술 규칙’을 익혔습니다. 조사자가 알 수 없는 내용을 물으면 “모른다”고 답하고, 이름을 일부러 틀리게 말하면 이를 바로잡는 연습을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엄기표)는 지난 2일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의 장애인들을 성폭행하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시설장 김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였습니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들이 기억하거나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수사기관의 유도에 영향을 받거나 서로 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진술하도록 하고 유도 가능성을 줄이는 데 활용된 것이 ‘NICHD 조사면담 기법’입니다. 아동이나 지적장애인 등이 허위 진술을 방지하고 정확한 기억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진술 기법으로,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 주도로 개발돼 국내에서는 2010년대부터 경찰 및 아동학대 전담 기관 등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전제하는 폐쇄형 질문 대신 피해자가 경험한 일을 직접 설명하도록 하는 개방형 질문을 사용합니다. “그 사람이 때렸나요”라고 묻기보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모두 말해주세요”라고 질문하는 식입니다.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는 “‘이것이 맞지’라고 물으면 ‘네’라고 답하는 암시성에 취약할 수 있어 질문법이 중요하다”며 “피해자가 최대한 자발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해바라기센터 소속 경찰관이 피해자를 조사했으며, 이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됐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영상을 법정에서 확인한 뒤 피해자들을 직접 증인으로 불러 진술을 들었습니다. 검찰도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틀린 내용은 고쳐달라”고 안내한 뒤 같은 원칙에 따라 신문했습니다.
 
피해자 측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의 변호사는 “NICHD 진술면담 기법은 지적장애인 피해자 조사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며 “최근 법원도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면담 기법의 절차와 기준을 준수했는지 등을 판단 요소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술을 받아내는 과정에 NICHD 기법이 활용됐다면,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데에는 준거기반내용분석(CBCA)이 사용됐습니다. 진술분석관들은 피해자들의 진술이 실제 경험에 기초했을 가능성이 높고 허위 진술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습니다. 의료진 소견과 시설 현장검증 결과도 진술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진술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성폭력·폭행 혐의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피고인 측의 공소사실에 범죄 일시가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재판부는 “이 이상 특정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사실상 중증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김 씨는 지난 4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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