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방 안의 창문: '하이브리드 워크'와 자율성의 경영학[인사혁신]
27/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2026-09-04 12:59:17 2026-09-04 12:59:17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5권 '갇힌 여인'에서 화자의 방은 겉보기와 달리 유폐의 장소가 아니다. 병약함과 신경증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 지내는 화자에게, 창은 외부 세계의 활기와 생명력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구축하는 신비로운 경계면으로 작동한다.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누워 있어도 두꺼운 커튼 위로 비쳐 드는 아침 빛의 미세한 색조, 거리 아래에서 들려오는 파리 상인들의 독특한 외침, 그리고 무엇보다 첫 전차가 구르는 소리가 빗속에 움츠러들어 있는지 푸른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지를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화자는 외부 세계의 공기와 날씨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화자는 굳이 거리로 뛰어나가지 않고도 침대 위에서 창밖의 소리와 빛을 통해 파리의 아침을 재구성한다. 방이라는 은밀하고 안락한 사적 공간과 거리라는 활기찬 외부 세계는 창문을 매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곳에서 화자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사유의 주권을 행사한다. 창문은 고립을 가로막는 통로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자유의 숨구멍이다. 그러나 침대와 벽이라는 견고한 물리적 토대가 부재했다면, 화자가 누린 내면의 자율성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해석 및 재구성)
 
팬데믹을 거치며 현대 비즈니스 세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은 '하이브리드 워크(Hybrid Work)'는 프루스트가 묘사한 '방 안의 창문'의 역학을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반추하게 한다. 임직원들은 거주지라는 사적 공간에서 고도의 집중과 유연성을 누리는 동시에, 디지털 협업 도구라는 '창문'을 통해 조직 및 외부 시장과 소통한다. 동시에 공간의 경계가 해체된 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서 경영진은 통제력 상실 불안과 생산성 저하 우려에 빠져든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직원, 그가 과연 태만하지 않고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의심하며, 그들의 모든 디지털 흔적을 엿보려는 감시의 유혹에 빠져들기도 한다.
 
원격 근무와 사무실 출근이 교차하는 하이브리드 워크의 성패는 물리적 체류 시간의 기계적 감시가 아니라, 각자의 은밀한 방에서 일하는 구성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되 이것을 조직의 목표와 어떻게 정렬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일방적인 물리적 감시는 직원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무조건적인 방임 역시 조직의 와해와 성과의 표류를 낳는다. 감시의 시선을 거두고 자율성과 책임이 공존하는 정교한 통제 구조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유연근무 시대에 기업이 지속가능한 혁신을 이루는 열쇠다.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생산성 편집증과 X·Y이론의 충돌
 
하이브리드 워크가 일상화하고 있음에도 많은 기업에서 생산성 편집증이 발견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공개한 글로벌 업무 동향 조사(2022)에 따르면 경영진의 대다수(85%)는 원격 근무 환경에서 직원이 실제로 생산적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반면 직원의 87%는 자신이 일터에서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식의 괴리는 다수의 기업에서 직원 컴퓨터에 일명 '보스웨어(Bossware)'라 불리는 감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퇴행적 조치를 선택하는 풍경으로 이어진다. 키보드 타이핑 수와 마우스 클릭, 화면 캡처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보스웨어는 더글러스 맥그리거가 규정한 전통적 X이론의 현대적 부활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일을 싫어하고 게으르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므로 엄격한 통제와 지시, 처벌의 위협이 필수적이라는 비관적 가정이다. 그러나 감시를 통한 X이론적 통제는 가짜 생산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우스를 자동으로 흔들어주는 '마우스 지글러(Mouse Jiggler)'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화면 앞의 무의미한 체류 시간만을 과시하는 '디지털 프레젠티즘'은 실질적인 가치 창출 대신 감시 회피 기술만을 발달시킨다.
 
주지하듯 맥그리거가 제시한 Y이론은 인간이 조건만 갖추어지면 일에서 본질적 만족을 찾고, 스스로 목표를 위해 헌신하며,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고 본다. 중요한 점은 Y이론이 통제의 부재나 느슨한 온정주의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맥그리거가 역설한 Y이론의 본질은 통합(Integration)의 원리다. 즉, 직원이 조직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노력을 집중함으로써 개인의 목표도 최선으로 달성할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Y이론 관점에서 통제는 외부의 물리적 족쇄가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성과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내면화한 목표 의식과 자기통제를 통해 완성된다.
 
자율성의 역설과 통제의 정당성
 
보스웨어를 통한 기계적 감시가 잘못이라고 해서, 경영진이 품는 성과 관리 욕망까지 부당한 것은 아니다. 자율성이 주어졌다고 모든 인간이 저절로 성실해지거나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는 관성과 인지적 태만, 무임승차의 유혹이 잠재해 있다. 더욱이 시공간이 분리된 하이브리드 환경에서 직원이 각자의 사적인 '방'에만 머물 때 회사를 향한 소속감과 정서적 유대는 급격히 마모되며 조직은 느슨한 외주 프리랜서들의 집합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워크의 핵심 과제는 자율성을 무한정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성과와 규율을 통제할 것인가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에드워드 데시 등이 제시한 자기결정 이론은 자율성만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자율성(autonomy)이 힘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유능감(Competence), 그리고 조직 및 동료와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성(Relatedness)이 추가되어야 한다. 세 욕구 모두가 기본적이며 각 욕구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통제의 대상은 직원의 신체와 시간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와 결과여야 한다. 자율성을 보장하되 성실을 담보하는 경영의 해법은 감시가 아닌, 높은 신뢰와 높은 책임성(Accountability)이 결합된 합리적 거버넌스를 설계하는 데 있다.
 
하이브리드 워크의 핵심은 직원의 시간을 감시하는 데 있지 않다. 명확한 목표와 책임성을 바탕으로 자율성을 보장하고, 조직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이미지=챗GPT)
 
합리적 통제 구조
 
자율성과 통제의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 기업은 일하는 방식과 평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 모델로 캘리 레슬러와 조디 톰슨이 제안한 '결과 중심 업무 환경(ROWE: Results-Only Work Environment)'이 종종 거론된다. ROWE 모델에서는 직원이 언제, 어디서, 몇 시간 동안 일하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사전에 정밀하게 합의된 결과물과 비즈니스 임팩트를 평가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다. 그러려면 리더 혹은 관리자의 역할이 감시자에서 목표 조율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모호하게 일을 던져두고 책상 앞 체류 여부를 감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ROWE의 원리를 실제 조직에서 구현하기 위해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마일스톤(Milestone)과 같은 별도의 관리 도구가 제안된다. 마일스톤은 긴 호흡의 프로젝트에서 유효하다. 구체적인 중간 마일스톤을 설정하여 정기적으로 진척도를 점검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엄격한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과 납기 준수의 원칙이 작동할 때, 자율성은 비로소 방종의 덫을 피해 전문성으로 진화한다.
 
나아가 실시간 즉답을 강요하는 디지털 족쇄에서 벗어나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조직의 표준으로 정립해야 한다. 깃랩(GitLab)이나 아틀라시안(Atlassian)과 같은 글로벌 원격 선도 기업들의 사례가 보여주듯, 업무 진행 상황과 의사결정 맥락을 공유 문서에 투명하게 기록하는 인프라는 감시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우월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업무 프로세스가 전사적으로 공개되는 급진적 투명성 속에서는 업무 가시성을 높여 활동 로그가 아니라 산출물과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동료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
 
원격 근무가 길어질수록 발생하는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다. 스탠퍼드대학교 닉 블룸 교수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무작위 대조군 실험(RCT) 연구(2024)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완전 원격이나 완전 출근이라는 양극단보다는 '주 2~3일 하이브리드' 모델이 균형점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핵심은 사무실 출근일을 조직의 통제력 복원과 소속감 증진의 장으로 전략화하는 것이다. 혼자 집중해서 처리할 수 있는 심층 작업은 각자의 '방'에서 자율적으로 수행하게 하되,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에는 개인 업무가 아닌 팀 브레인스토밍, 복합 문제 해결, 그리고 신뢰 형성을 위한 비공식적 교류에 집중하도록 업무 설계를 차별화해야 한다. 무의미하게 사무실에 나와 각자 이어폰을 끼고 모니터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출근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처사다.
 
또한 리더는 정기 면담을 통해 업무의 진척뿐만 아니라 직원이 겪는 정서적 고립감, 업무 정렬 상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직원이 조직의 큰 그림 안에서 자신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방 안의 고립'은 깨어지고 견고한 소속감이 싹튼다.
 
[안치용의 Critique: 견고한 벽이 있어야 창문도 열린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의 방 안 창문이 예술적 사유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를 지탱하는 방이라는 단단한 물리적 공간과 침대라는 안정된 기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람을 막아줄 견고한 벽과 천장이 없는 곳에서 창문은 성립할 수 없다. 외부의 폭풍우를 막아주는 구조적 안정성 위에서만 창문은 비로소 세상과 교감하는 자유의 숨구멍이 된다.
 
하이브리드 워크의 경영학 역시 다르지 않다. 자율성이라는 '창문'은 허공에 홀로 떠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명확한 목표, 결과에 대한 엄격한 책임성, 투명한 협업 시스템, 그리고 조직적 소속감이라는 견고한 벽이 단단히 받쳐줄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자율성이 성실을 저절로 보장하지 않듯, 감시가 생산성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낡은 관료적 감시로 직원을 질식시키는 것은 창문을 걸어 잠그고 방을 감옥으로 만드는 잘못이며, 아무런 규율과 피드백 없이 방임하는 것은 벽을 허물어 집 전체를 붕괴시키는 잘못이다. 합리적인 성과 통제 시스템이라는 벽을 튼튼히 세우고, 그 안에서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도록 자율성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시대의 경영이 도달해야 할 가장 성숙한 신뢰와 통제의 변증법이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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