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재난 현장에 로봇을 들이면서, 정작 쓸 사람에게는 묻지 않았다
제23회/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9-03 16:38:59 2026-09-03 16:38:59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연기가 능선을 넘어오는 새벽, 사람보다 먼저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로봇이다. 탱크처럼 바퀴 대신 궤도를 두른 작은 로봇이 열화상 카메라로 잔불을 훑고, 무너질 듯한 나무의 온도를 재고, 그 정보를 지휘차량으로 실어 나른다. 로봇이 사람보다 먼저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정작 그 로봇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 왔다. 그 불길 속에 실제로 들어가 본 소방관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먼저 물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간극을 실제 데이터로 드러낸 연구가 2025년 4월 발표됐다. 폴란드 소방대학교(Fire University, Warsaw) 소속 연구원이 호주 연방과학원(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 CSIRO)의 연구원과 함께 진행한 이 연구는, 폴란드와 체코, 프랑스, 독일 4개국의 소방 전문가 24명에게 산불 현장에서 로봇에게 가장 바라는 기능이 무엇인지 물었다. 응답자들은 지휘관이거나 20년 안팎의 현장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돌아온 답은 92가지에 달했다. 화재를 처음 감지하는 순간부터 진화 작전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소방관들은 여섯 단계마다 로봇에게 바라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그런데 연구팀이 정작 눈여겨본 지점은 정찰만이 아니라 실제로 불을 끄는 진화 전술 단계이기도 했다. 물탱크와 호스를 지고 나르고, 방어선을 구축하고, 진화 장비를 직접 다루는 로봇에 대한 요구가 구체적이고 촘촘했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연구팀은 이 응답들을 안전 확보, 상황 인식, 진화 지원이라는 세 갈래 기능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소방관들이 그리는 로봇의 쓰임새가, 지금까지 개발된 재난 로봇의 표준 사양이나 기존의 재난위험경감 논의가 다뤄온 범위보다 훨씬 넓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같은 문제의식은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확인된다. 조지메이슨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와 버지니아공과대학교(Virginia Tech) 소속 연구원들이 2026년 2월, 버지니아의 5개 지역 법집행기관 소속 경찰 전문가 8명을 불러 모았다. 실종자를 찾는 도시 수색에 지상 로봇 편대가 있다면, 이들은 어디에 투입하고 무엇을 맡겨야 할까. 연구진은 그 가상 시나리오를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실종자 수색 경험을 지닌 형사·경위·경사·대위·소령급 경찰 전문가들이었다. 연구팀은 치매를 앓는 고령자나 아동을 비롯한 실종자 수색이 높은 인지적·신체적 부담 속에서 이뤄진다고 봤다. 그러면서 컴퓨터 비전과 거대언어모델을 결합한 로봇 안내 체계가 계속 발표되고 있지만, 정작 그 기술을 매일 손에 쥐게 될 현장 전문가들의 시선에서 검증한 연구는 찾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현장에 맞지 않는 정교한 기술을 만들 위험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90분씩 진행된 토론에서 현장 전문가들은 막연한 기대만 늘어놓지 않았다. 로봇 무리가 들어오면 그동안 종이 지도를 뒤적이고 머릿속으로 수색 구역을 나누고 무전으로 일일이 조율하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동시에 이들은 구체적인 조건을 하나하나 짚었다. 여러 대의 로봇을 한 화면에서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관할마다 다른 도로 사정에 맞춰 경로가 자동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 현장 상황이 바뀌면 그 즉시 계획도 다시 짜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로봇이 알려주는 정보가 현장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판단 부담은 덜어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까지, 요구는 명확했다.
 
소방관과 경찰관, 그리고 이와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 대륙도 다르고 임무도 다른 전문가 집단이 내놓은 답에는 뜻밖에도 같은 결이 흐른다. 로봇을 재난과 위기의 현장에 먼저 들여보내는 일은 이제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정작 더디게 채워진 것은 그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묻는 절차였다. 두 연구 모두에서 확인되듯, 현장 전문가들은 로봇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로봇이 대신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을 놀랍도록 명확하게 짚어냈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로봇이 이미 만들어진 다음에야, 그것도 연구자가 일부러 찾아가 물어야 겨우 들리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는 데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두 연구가 진짜 말하는 것은 로봇의 성능이 아니다. 재난 현장에서 로봇을 설계하는 순서 그 자체다. 적어도 이 두 연구가 들여다본 영역에서는, 기술이 먼저 완성되고 그 기술을 현장에 맞게 적용하는 순서로 개발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목숨이 오가는 재난 현장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뀌어야 한다. 불길 속으로 먼저 들어갈 로봇을 설계하기 전에, 그 불길 속에 들어가 본 사람에게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아쉬웠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찰이 우선인지 진화가 우선인지, 여러 대를 한 화면으로 통제할 방법이 필요한지는 실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온다.
 
이 원칙은 재난 로봇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병원, 학교, 공장, 어디든 피지컬 AI가 들어가는 공간마다 그 공간을 매일 살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먼저 묻지 않고 만들어진 로봇은 아무리 정교해도 현장에서 겉돌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 목소리를 먼저 담아낸 로봇은 성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현장에 뿌리를 내린다.
 
그런데 이 순서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기술은 전시장에서 박수를 받고, 투자를 끌어오고, 논문으로 남는다. 반면 현장의 목소리는 그 어떤 성과 지표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개발자는 늘 눈에 보이는 쪽, 즉 기술을 먼저 완성하고 사람은 나중에 끼워 맞추는 길을 택해 왔다. 이 순서를 뒤집는 일은 기술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헛다리를 짚지 않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일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값싼 보험이다.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이 로봇이라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 로봇에게 무엇을 시킬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대상은 여전히 사람이다. 이 질문의 순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교한 로봇도 가장 위험한 순간에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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