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를 위해 도입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 8년을 맞았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규제를 집값 억제 수단으로 활용해 온 정책이 시장 안정에는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급지 쏠림과 대출 선수요를 자극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는 평가입니다.
대출 규제 강화에도 서울 집값 고공행진
5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지난 7월 12억7583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은행권에 DSR 관리지표가 본격 도입된 2018년 10월 8억3000만원과 비교하면 4억4583만원(53.7%) 상승했습니다. 대출 규제가 단계적으로 강화됐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일부 부침은 있었지만 장기간 상승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도 15억9490만원으로 16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역별 상승세도 이어졌습니다. 강남 11개 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19억7790만원으로 20억원에 근접했고 강북 14개 구는 11억6880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가 모두 오른 가운데 중랑구는 한 달 새 2.08% 상승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강북구와 성북구도 2% 안팎의 오름폭을 보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7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 이후에도 서울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7월 약 11억2000만원에서 올해 7월 12억7583만원으로 1년 만에 무려 13.9% 상승했습니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강도 높은 규제가 시행됐지만 서울 주택시장은 오히려 상승세를 탔습니다.
전세시장 역시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7억458만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 7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올들어 6개월 사이에만 3510만원 올랐습니다. 월세시장도 올해 들어 5.3% 오르며 매매·전세·월세 가격이 모두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 추이.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똘똘한 한 채 수요 몰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가 강해질 수록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층에서는 가격 방어력이 높은 핵심 지역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러 차례 주택을 갈아타기 어려워진 만큼 한 번 매수할 때 상급지를 선택하려는 심리가 커진다는 지적입니다.
규제가 반복될수록 시장에 '지금 아니면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다'는 막차 심리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규제 시행이 예고되면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기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고, 주택 매수 시점도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출 규제 발표가 단기적으로 대출 선수요와 매수심리를 자극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김경율 전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현상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면서 "정책 방향이 계속 바뀌고 보유 주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민 입장에서는 결국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노도강 같은 지역도 이미 주택 가격이 크게 올라 대출 없이 매수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금융까지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이 전월세 시장 불안과 실수요자의 매수 전환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 소장은 "강남권은 자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가 주로 진입하는 시장이라 최근 상승폭이 크지 않지만, 15억~20억원대 이하 지역에서는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실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전세를 구하기 어렵고 월세 부담도 커지다 보니 월세를 내느니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겠다는 심리가 생긴다"며 "몇 년 뒤 주택을 구매하려던 수요자들도 불안감 때문에 매수를 앞당기는 상황에서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임대 공급 역할을 하는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접근도 함께 고민해야 하고, 이들을 투기 대상으로만 보면 오히려 전월세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애초 DSR이 과도한 차입을 막고 금융시스템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였지만, 점차 집값을 조절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본래 목적이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서로 다른 정책 목표를 동시에 해결하려다 시장 혼선만 키웠다는 평가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DSR은 기본적으로 차주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금융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인데, 최근에는 부동산 가격을 조정하기 위한 수단처럼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가계부채 관리와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를 하나의 규제로 해결하려다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까지 제약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출 규제만으로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DSR은 차주의 소득과 상환 능력에 맞춰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는 본래 기능에 집중하고, 집값 문제는 공급 확대와 주거 이동 사다리 복원 등 별도의 부동산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집 마련까지 걸리는 기간도 갈수록 길어지고 있습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혼인 당시 무주택이던 기혼 가구는 평균 13.1년이 지나서야 첫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택 구입 당시 평균 연령은 42.2세였으며 서울에 거주하던 임차 가구 상당수는 집값 부담으로 경기도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토연구원은 수도권의 양질의 주택 공급 확대와 가격 안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무주택 가구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장에서는 DSR을 본래 목적인 가계부채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주택 공급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정책은 집값 상승폭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려면 금융 규제뿐 아니라 공급 확대가 함께 가야 한다"며 "재건축·재개발과 도시정비사업 등 공급 기반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급 확대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공급 대책은 놔둔 채 단기적인 세제와 금융 규제만으로 시장을 관리하려 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과 세제, 공급 정책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노원구 일대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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