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극우 청소년 키우는 일그러진 정신 세계
2026-09-09 06:00:00 2026-09-09 06:00:00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5·18 광주민주항쟁을 폄하한 사건의 사회적 파장은 컸다. 사건 자체는 아직 미숙한 학생들의 실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의 참상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왜곡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건의 배경에는 보수 세력의 집요한 시도가 있다. 고교생의 미흡한 역사의식이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려는 성인들의 일그러진 정신세계가 문제인 것이다.
 
보수 논객들은 “북한군이 개입했다”, “가짜 유공자가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5·18을 폄하해 왔다. 반복된 거짓말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부 시민의 뇌리에 들어가 정착했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일부 가해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광주 시민을 폄하하는 유언비어를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다. 1980년 5월에 광주에 진압군으로 갔던 예비역 장교가 “시민군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북한군이 틀림없다”고 고교 동창회 단톡방에 글을 올려 소동이 일어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총탄이 오가는 전장에서 느낀 공포와 죄의식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해 생성된 허위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과거사 진상규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전두환·노태우가 구속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파는 예비역 군인 단체와 일부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태극기·성조기·이스라엘기를 들고 대중집회를 열며 지지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는 확인이 안 된 사실을 무작위로 퍼뜨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은 또래집단에서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거칠고 근거가 없는 정보를 거부하지 못한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집단이 늘고 사회불안이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동가가 등장해 불안한 상태에 있는 대중에게 불행의 원인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타도해야 할 악당을 분명하게 지목하면 이들을 지지 세력으로 쉽게 동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히틀러의 나치당이 사용한 수법이었다. 태극기 집회를 여는 한국의 극우파가 나치만큼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비전이나 국가 경영 능력을 과시하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를 싫어하는 한국의 보수파 기독교는 대안학교를 조직해 극우 이념으로 무장된 미래의 전사를 대량으로 양성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트럼프 정권과 연결되어 있다. 보수파 대안학교는 모든 사회적 불행을 민주화운동의 탓으로 돌리고 현재의 물질적 풍요는 박정희·전두환이 남긴 유산이고, 통일은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미국·일본과 연합해 중국·북한을 막아야 한다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구도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올림픽공원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 현장이다. 청년, 대학생들이 앞장서고 보수파 기독교인이나 예비역 군인들이 응원하고 있으며 재미 동포들도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종교탄압을 한다느니,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있다느니 하는 미국발 가짜뉴스의 근원은 한국의 보수파 기독교 단체이다. 최근에는 트럼프 정권 주위에 있는 우파 단체들이 한국에 지점을 설치해 한미 양국의 보수파가 계열화되고 검은 머리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중개 역할을 하며 존재를 과시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결국 배재고 야구부의 5·18 폄하 사건은 기성 세대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세계와 만성적인 사회불안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체육 특기생으로 매일 운동장에서 살다 보니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도 없었을 학생 선수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일본 덕분에 문명인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고 독재자를 칭송하는 어른들이 문제다. 극우파가 준동할 수 있는 토양을 없애려면 우선 이재명정부가 교육개혁을 비롯한 사회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정책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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