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판결문'이 구한 사각지대…'꼬투리 잡기식' 장애 판정 제동
사회적 제약 고려 않는 장애판정…의학적 기준으로 '배제'
법원 "현행 장애판정기준 잘못됐다" 새로운 판례 제시해
행정부처에 "헌법·법률 따라 실무 운용해야" 경고하기도
2026-06-30 16:41:13 2026-06-30 17:04:52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쉬운 판결문’으로 알려진 지적장애인을 위한 판결문이 장애 판정 기준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법원의 새로운 시선을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원은 의학적 수치에 의존하는 현행 판정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당사자가 직면한 사회적 장벽을 중점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6월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는 같은 달 25일 A씨(25세)의 지적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양천구청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A씨는 어릴 때 부모의 학대로 시설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지능지수(IQ)가 70 이하일 뿐 아니라 뇌전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겪어왔습니다. 이에 종교 기관 도움으로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은 과거 지능지수가 70을 초과한 적이 있다는 등 이유로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장애 정도 판정 기준인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과 고시 등에서 지적장애인은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A씨처럼 장애 등록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많다는 게 장애계 오랜 지적이었습니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위법령인 시행규칙과 고시 등에서 장애 유형을 15개로 한정하고,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판단하도록 한 탓에, 일상·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받더라도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장애 판정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시행규칙은 장애 구분 척도로 지능지수만 제시할 뿐, 사회생활에서의 제약 여부를 판정할 아무런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행규칙은 모법인 장애인복지법에 합치되지 않는 위법한 기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사회생활 제약 여부 판단에 매우 불완전한 척도에 불과한 지능지수 산정에서의 일부 의문만 들어 장애를 섣불리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형식적 종류에 따라 장애 유무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불과한 장애 정도 판정 기준이나 시행규칙 등이 분류하는 장애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도 섣불리 장애 비해당 처분을 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헌법과 모법(장애인복지법)에 대한 합치적 해석 원칙에 따라 법률이 정한 장애의 개념 정의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하위 규범을 정립하고, 실무를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장애인복지법 취지에 대해 “장애 여부를 엄격히 가려내는 데 있다기보다,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해 필요한 복지적 지원을 제공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짚었습니다.
 
장애계와 법조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했습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판결은 장애 판단에서 사회적 제약을 중점에 둬야 한다고 판단한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회적 제약을 중심으로 장애 판정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제형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번 판결처럼 시행규칙과 고시 등의 의학적 기준에 따라 장애 등록을 결정하는 처분에 대한 위법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판결이 쌓여야 행정 실무가 변할 수 있다”며 “지금처럼 장애 등록이 돼야 서비스를 제공받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에서 제약이 있는 영역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제공받는 방식으로 장애인 등록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판결문은 지적장애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일상적 표현과 그림이 사용됐습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 추진 후 전문합의부에서 처음 선고되는 ‘이지 리드(easy-read)’ 판결문입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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