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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로그 인 벨지움’, 이렇게 유혹적인 기록이라면…
배우 유태오, 1년 전 벨기에 ‘셧다운’ 고립 실제 경험 속 공포와 외로움
자기 분열-자기 복제 속 내면의 고민과 혼란…언어 분열 통해 극적표현
2021-12-02 02:00:01 2021-12-02 02: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구구절절 이유 다 빼고 결론부터 얘기한다. 매우 놀랍다. 특별할 것 없는 영상이 시선을 사로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단 듯 덤벼든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점은 정말 특별한 상황이나 얘기가 없단 점이다. 그저 나 그리고 또 다른 나가 등장해 일상을 공유한다. 일종의 트루먼쇼같은 느낌이다. 내가 나를 보고 나 아닌 다른 내가 날 본다. 그들의 대화와 공유는 투박한 화질 속에 오롯이 담긴다. 근데 투박스런 화질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뭔가 훔쳐보는 느낌이다. 관음적 시선이라고 하면 야릇한 상상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숨은 욕구를 의도적으로 자극했을지언정 훔쳐 보는 맛에 대한 취향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인가 보다. 참고로 이 영화(영상), 출시 된지 꽤 오래된 국내 브랜드 휴대폰으로만 촬영됐단다. 검색을 해보니 2018 2월 국내 출시된 모델이다. 하루가 다르게 신모델로 출시가 되는 휴대폰 업계에선 구식 중에 구식이다. 그리고 이 휴대폰, 이 영화 출연 배우이며 연출자이고 편집자이며 기획자인 주인공이 여전히 지금도 실제 사용 중이다.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 냄새가 나지만 누구보다 김치가 잘 어울리는 배우. 최근 들어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색깔의 배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유태오가 출연하고 찍고 편집하고 만들어 낸 로그 인 벨지움이다.
 
 
 
로그 인 벨지움은 유태오의 1인극 또는 모노드라마, 유태오와 또 다른 유태오의 2인극이기도 하다. 유태오를 주인공으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불러도 된다. 사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결과물이다. 그게 애매하단 뜻은 아니다. 굉장히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창조물이 됐다.
 
시작은 서유럽 벨기에의 도시 앤트워트. 우리에겐 그저 와플로만 유명한 나라. 하지만 로그 인 벨지움에선 그곳이 벨기에인지 아닌지 사실 가늠키도 힘들다. 관객은 대부분 작은 호텔방만 볼 수 있다. 이건 1년 전 유태오가 실제 벨기에 방문 후 겪은 격리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벨기에를 방문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고국으로 돌아갔다. 유태오는 일정이 뒤틀리면서 발이 묶였다. 도시 자체, 나라 전체가 셧다운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립이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사진/(주)엣나인필름
 
답답하다. 당연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식당은 문을 닫았다. 호텔 로비는 하루 2시간만 개방된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오다. 사실 유럽은 그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낯선 곳이다. 고독함이 밀려온다. 그 뒤에는 공포와 포기의 감정이 올 것이다. 유태오는 살아야겠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찍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분열을 일으킨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 둘은 서로 대화를 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때마침 미국에서 드라마 오디션 제안이 왔다. 할 것도 없었는데 마침 정말 잘됐다. 유태오는 카메라를 켜고 대본을 읽고 연기를 한다. 오디션 테이프를 준비한다. 아무래도 혼자 모든 걸 하려니 이 살지 않는다. 거울 뒤 또 다른 유태오가 있었다. 둘은 죽이 잘 맞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연기의 주고 받음 호흡을 맞추면서 멋들어지게 오디션 테이프를 완성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꽤 괜찮은 친구를 얻은 유태오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사진/(주)엣나인필름
 
로그 인 벨지움은 고립과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 안에서 공포와 생존 사이 어떤 것을 마주하면서 유태오는 본능적으로 자리 분열을 선택한다. 분열 속에서 그는 시간과 공간마저 분열시킨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평소에 느껴왔던 그리고 함께 공존했지만 애써 외면했던 불안의 실체와 마주해 볼 용기를 조금씩 충전시킨다.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독일어를 오가며 자기 분열과 복제를 거듭하는 유태오의 정체성은 이런 불안과 마주한 가장 원초적 본능에 대한 실체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태어난 한국인,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그렇지도 않다고 할 수 없는 중간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존재. 이 낯선 땅에서 만약 사라지게 된다면 자신은 무엇이 될까. 무엇으로 남을 수는 있는 걸까.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사진/(주)엣나인필름
 
분명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질문과 답변 그리고 의식의 흐름처럼 따라가는 미장센과 거친 화면이 만들어 낸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로그 인 벨지움속 유태오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생각 그의 고민이 있는 척하는 예술가의 심각한 자기애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그는 의도적으로 로그 인 벨지움을 일상의 연속으로 장식하려 노력한다. 창작이 아닌 기록의 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사진/(주)엣나인필름
 
벨기에를 넘어 한국에 돌아온 유태오는 여전히 카메라를 잡고 있다. 벨기에의 낯선 느낌 공허한 공간 차가운 숨결은 없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익숙하고 포근하다. 완벽한 반전이다. 유태오가 느끼는 이질감과 자기 분열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 이 모든 걸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벽이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끝이다. 이제 딱 한 발만 내 딛으면 된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사진/(주)엣나인필름
 
사실 여러 수식 그리고 여러 해석을 떠나서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만큼 흥미롭고 기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또 있을까. 유태오란 배우의 속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로그 인 벨지움꽤 유혹적이다. 12 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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