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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2021-01-13 06:00:00 2021-01-13 06:00:00
4조4922억원.
 
11일 하루에 개인들이 순매수한 코스피 주식 규모다. 이런 숫자를 본 기억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IT버블 때부터 시장에 몸담은 20년 동안 매머드급 충격이 워낙 많았으니 기록을 뒤져보면 비슷한 숫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신기록이었다. 같은 날 기관도 3조7423억원 순매도 신기록을 썼다.  
 
2800선부터 2900, 3000, 3100을 넘어 3200선까지 거침없이 돌파한 이 숫자들은 모두 이번 상승장에서 쓴 신기록들이다. 그 사이 코스피 시가총액 2000조원 시대를 열었으며, 삼성전자도 7만전자, 8만전자, 9만전자를 달성하면서 시총 500조원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SK하이닉스도 잠깐 100조 시총을 맛봤다. 
 
자고 일어나면 증시 신기록이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 ‘매매현황에서 또 하나 신기록이 나왔나 보다’라며 흘려 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징후라는 게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조건반사처럼 솥뚜껑을 보면 놀라고 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월봉을 보자. 거침없는 상승을 눈으로 확인하며 가슴이 웅장해지는가? 석달 동안 만들어낸 장대 양봉 3개가 절벽처럼 느껴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낭떠러지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비싸다는 말이 아니다. 너무 급하다. 옵션시장에서는 몇 분 사이 만 퍼센트 넘는 수익률이 터진다. 온 데서 폭죽이다. 
 
HTS에 시총 상위 100종목을 관심종목에 등록해놓고 매일 살피고 있다. HTS 관심종목 화면을 켜면 20종목이 눈에 들어온다. 위쪽이 뻘겋게 달아올라있다. 하지만 스크롤바를 내리는 순간 뜨거운 열대기후가 냉대기후로 바뀌기라도 하는 듯 새파랗게 질린 하락 종목들의 숫자가 주르륵이다. 시총 상위 몇 종목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의미다. 이런 장세에서는 주도주가 꺾이는 순간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옆으로 흐르며 실적이 쫓아오길 기다리면 좋겠는데 기대감의 크기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트리거가 될 만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면 그걸 핑계 삼아 추락할까 걱정이다. 
 
분위기 좋은데 초치는 말해서 죄송하지만 이젠 경고등을 켜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은 20년 동안 숱하게 들었다. 더 오를 수도 있다. 그건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처럼 후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면 될 일이다. 
 
하락장은 “이제부터 하락합니다”라면서 찾아오지 않는다. 조정의 탈을 쓰고 수많은 오르내림과 손바뀜 속에서 ‘어느새 벌써’ 같은 느낌으로 진행된다. 
 
처음 맞는 개인투자자들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계좌에 찍힌 평가이익은 의미 없다. 팔아야 진짜 이익이다. 어쩌다 동학개미 행렬에 참여해 난생 처음 주식으로 큰 수익을 얻었다면 부디 안전하게 빠져나가시길 기원한다. 이왕이면 이번 투자를 경험삼아 이제부터 하나씩 제대로 배우며 주식시장에 안착했으면 좋겠지만, 투기적 매매로 돈맛부터 본 사람들은 배움보다 또 다른 판에 눈이 쏠리기 마련이다. 
 
“뭐하니? 누나 돈 세 배로 땄으면 집에 가야지. 집에 가기 싫니?” 
 
영화 ‘타짜’에서 돈을 딴 고니에게 건넨 평 경장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할 때다. 물론 평 경장은 이 말을 남기고 죽었고, 고니는 집에 가지 않았기에 끝까지 살아남아 타짜가 됐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뒤였다. 내가 고니가 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버려야 한다. 
 
끝으로, 이런 설레발이 빗나갔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하고 기자 혼자서만 창피해 쥐구멍을 찾으면 될 테니까.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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