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선두주자였던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위기를 맞으면서 틈새 공략을 향한 후발주자들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 공략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삼성전자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 1위 이동통신 업체 버라이즌과 66억달러(약 8조원) 상당의 5G 장비 관련 대형 계약을 따내면서 화웨이를 능가할 주요 경쟁자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의 스테판 폰그래츠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버라이즌과의 계약으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성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차세대 먹거리로 통신 장비를 꼽은 이래 기술 경쟁력을 키우며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앞서 미국 AT&T와 뉴질랜드 스파크, 캐나다 탤러스·비디오트론, 일본 KDDI 등과도 5G 장비 관련 파트너십을 맺으며 잇따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버라이즌에 28GHz 주파수 대역을 지원하는 5G 통합형 기지국을 공급하고, 품질 개선과 생산성 확보에 성공한 결과 이번 빅딜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델오로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화웨이·에릭슨·노키아가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시장을 70~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입지를 지속적으로 다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5G 통신 장비를 비롯한 전체 통신 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지난해까지 한자릿수에 불과했지만, 올해 5G 시장 기준으로 10~15%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정적인 공급망은 삼성전자의 강점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네트워크 장비 생산·공급망은 중국에 거의 노출되지 않아 미국의 제재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측면에서다. 삼성전자는 네트워크 장비를 한국과 베트남에서, 5G 모뎀 같은 핵심 요소는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한편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연된 5G 인프라에 대한 글로벌 대규모 투자가 서서히 재개되면서 통신 장비 업체들은 대형 수주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는 후발주자들에게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최소 14개국 이상이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시키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프리카와 같은 신흥 시장에서는 화웨이의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가 장기간 아프리카 통신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만큼 5G에서도 유리한 입지에 놓인 상황이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도 다른 경쟁자들이 화웨이를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시장의 경우 노키아와 에릭슨이 화웨이의 빈자리를 점유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삼성전자는 중국을 잇는 최대 통신시장인 미국과 또다른 '포스트 차이나' 꼽히는 인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인도와 중국 간의 관계 악화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실장은 "네트워크 장비의 경우 기존에 깔려있는 전 세대 인프라에 완전히 독립되지 않고 얹혀서 가는 경우가 많아 단기간에 기존의 강자들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삼성전자가 버라이즌과 맺은 계약은 장기간 인프라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국내 장비 업체의 위상을 바꿀만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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