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완전히 새로운 삼성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했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부터 3대째 이어진 경영권 승계의 고리를 끊고, '무노조경영' 원칙을 격파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재계 서열 1위 기업인 삼성의 변화가 국내 기업들에 미칠 파장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6일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경영권 승계 현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유사한 맥락의 주장을 지속해왔지만, 공식적으로 '4세 경영 승계'를 포기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이 같은 공표를 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이 부회장은 '녹록치 않은 경영 환경'을 언급했다. 현재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생산기지가 마비되고 공급망과 유통점이 폐쇄되면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이전까지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따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 막대한 손실을 빚을 수 있는 위태로운 국면을 지나왔다. 아울러 전 세계 기업들간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사업들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경영권 승계' 관련 사안이 삼성이 겪고 있는 사법 리스크의 핵심 쟁점인 만큼 강력한 환골탈태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정농단에 가담했다는 혐의 등으로 파기환송심이 진행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관련 검찰 수사의 쟁점도 모두 경영권 승계로 귀결된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번 파격 발표가 사법 리스크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의 결정이 국내 대기업들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쏠린다. 한진, 대림산업 등 오너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의 사례가 축적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승계 경영' 대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통한 경영 체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이날 처음으로 82년간 이어져 온 '무노조경영'의 철폐를 약속하면서, 건전한 노사 문화 확산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노동3권' 보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해, 같은날 출범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한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6개 노동조합들의 삼성그룹노조연대의 교섭 활동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사과에 대해 "결국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며 다짐에 대한 실천이 조속히 실현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가 요구한 시민사회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발표했다. 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에 대해서 재판과 무관하게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다짐도 내놨다. 무엇보다 "법을 어기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 받을 일도 하지 않겠다"며 "오로지 회사 가치 높이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시민, 의료진을 보며 국격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를 이끌어 낸 준법감시위의 행보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선이 나온다. 준법감시위는 출범 한달여만에 2013년 삼성이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후원내역을 무단열람한 것에 대한 사과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까지 이끌어 내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준법감시위가 '재판거래 조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성과에 치중하면서 설립 취지와 다르게 과거의 법률적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삼성을 만들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읽히는 사과였다"며 "기업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준법감시위도 이제는 과거사 청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앞으로의 경영 활동과 관련된 사안에 무게를 두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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