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신년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과 효성·대림 총수의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산업 생태계에 영향을 줄 굵직한 재판이 지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 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에다 총수들까지 줄줄이 재판에 연루되자 산업계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불확실성 탓에 당장 새해 경영계획도 세우기 어려운 실정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계 5대 그룹에는 적어도 1건 이상의 주요 재판이 연관돼 재판 결과가 경영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늦으면 상반기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달 17일에 열리는 4차 공판에서는 손경식 CJ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박근혜 정부 당시 기업들의 뇌물공여가 수동적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이야기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수동적 뇌물 주장이 받아들여져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된 만큼 손 회장의 증언이 이 부회장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지 주목된다.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은 이밖에 새해에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등 3건의 항소심도 진행 중이다. 1심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전 대표 등이 실형을 받고 구속된 상태다. 아직 재판부 배당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삼성 측에서는 20여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연루돼 있는 만큼 향후 재판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 임원들 재판에서 실형 선고가 많이 나오면서 김앤장 등 변호인단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항소심에서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와 관련해서도 이달까지 조사를 끝내고 사건을 마무리할 계획인 만큼 해당 사건이 기소된다면 삼성 관련 주요 재판은 총 5건에 이르게 된다.
현대차는 총수가 직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재판은 없지만 늑장 대응 논란이 일었던 세타2 엔진 결함에 대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지난해 두 번 열렸던 공판기일에는 변호인 측이 "기록에 대한 열람·복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관계 정리를 못 했다"는 이유를 드는 바람에 심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다음 달 열리는 세 번째 공판 기일에는 사실관계 인부에 따라 증인신청도 이뤄질 방침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해 동거인 악성 댓글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노 관장이 "이혼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최 회장에 맞소송으로 대응하며 재산분할에 나선 상황이다. 노 관장이 요구한 위자료 3억원,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42.29%에 대한 재산분할에 대해 재판부가 얼마만큼 인정할 지가 관심사다. 해당 소송 결과가 SK 지배구조 개편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당장 SK그룹이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돌입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SK 지분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어 오너 지분률 하락을 막기 위한 경영권 안정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4위 LG는 총수 일가의 탈세 혐의 관련 항소심 재판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검찰은 LG 총수 일가가 LG상사 지분을 그룹 지주사인 ㈜LG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 사이의 거래가 아닌 것처럼 꾸며 156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1심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 두 번째 기일은 법원 인사 이후인 3월에 예정돼 있어 재판부가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롯데는 롯데건설·롯데케미칼 등 9개 계열사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해외 계열사 정보를 숨겼다는 혐의로 1심에서 벌금 9억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뇌물 교부와 배임수재 등 개인비리 혐의를 놓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허수영 전 롯데케미칼 사장도 있다.
이밖에 CJ는 장남 이선호 부장의 마약 혐의와 관련해 2심을 준비 중이다. 두산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4세 박중원씨의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대림과 효성은 이해욱 회장과 조현준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조 회장은 이달부터 시작되는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와 관련한 항소심 재판도 있다. 코오롱은 인보사 사태와 관련, 코오롱생명과학 대표의 구속은 면했지만 식품의약안전처와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데다 임상개발팀장 재판도 예정돼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산업계는 각종 대외 악재에다 총수들과 임원들의 재판 리스크까지 겹치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신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섣불리 하기 힘든 상황이다. 당장 삼성은 통상 12월초에 단행하는 임원 인사를 올해로 미뤘다. 수조원 단위의 대규모 인수합병도 2017년 이후 찾아볼 수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업 성장이 힘든 상황에서 재판까지 연루되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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