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정하 기자] 조수연 그래픽저널리스트는 지난 30년간 몸담았던 증권사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처음 회사를 관두게 됐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했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고 새로운 꿈에 대해 말했다. 지금은 글로벌이코노믹이라는 언론사에 소속돼 경제이야기를 만화로 담은 카툰을 연재하고 있다. 연재하는 코너는 '마켓뉴스', '마켓포커스'. '콕 짚는 그래픽경제' 세 가지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는 건 당연할 정도였다. 선생님을 도와 괘도에 들어가는 시청각자료도 그렸다. 그러나 당시 그림 그리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하고 접어뒀다. 대신 증권사에 입사해 홍보실을 거치면서 회사 기업이미지(CI)나 광고이미지, 지점 디자인 등을 기획할 때 그림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작년 11월, 29년11개월을 다녔던 증권사를 나와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도 썼다. 2011년 있었던 도이치뱅크 옵션쇼크 사태와 관련된 얘기였다. 증권업계에 몸 담으며 겪은 일 중 어두운 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꿈은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다. 이름은 '공정한 금융투자 연구소'다.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조수연 전 하나금융투자 상무. 증권사 은퇴 후 그래픽저널리스트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진/조수연 제공
-증권사 퇴직 후,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작년 11월 말을 끝으로 30년 다닌 회사를 떠나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에서 다녔기에 '다음에 뭘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았다. 냉철하게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내가 잘 하는 일에 대해서다. 처음에는 소설을 썼다. 현직에 있으면서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인 2011년 도이치뱅크 옵션쇼크에 대한 얘기였다. 나중에야 도이치뱅크가 주가폭락 유발로 처벌도 받고 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가 손실을 떠안게 됐다.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추적도 해보고, 관련 기사 스크랩을 하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었다. 아직 출판은 안됐다. 묵혀둔 상태다.
그러다 우연하게 그래픽으로 증권업과 관련된 몇 가지 그림을 그리게 됐다. 원래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아주 어릴때부터다. 부모님의 반대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회사 홍보실에 몸담으면서 기업이미지(CI)나 광고이미지, 지점 디자인 등을 기획할 때에 틈틈이 그림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예전에 리서치센터에 몸담으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 그림이라고 판단했다. 보고서가 법인투자자 중심으로 돼 있어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해온 터다. 나야 학부에서 석사까지 경제를 전공하고 증권사에 입사해 평생을 머물렀지만,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처음에는 카툰 형식으로 그려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더스쿠프'라는 언론사에서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실을 수 있느냐 물어와, 외부에 공개하게 된 게 올 초다. 일주일에 한 번 8컷짜리 카툰을 그렸는데, 정말 일주일이 꼬박 걸렸다. 하지만 따로 소득이 없는 점이 고민됐다. 생활도 중요한 부분이다. 3D 그래픽이 일거리가 된다는 얘기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연재를 멈췄다. 그래픽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끈기와 감각이 모두 필요하다. 공부도 잠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게 돼 언론사에 소속돼 그래픽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됐다. 출근은 주 1회지만, 작업실에서 매일 새벽 4시반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한다. 10년을 매진한다고 해도 60세 중반밖에 안 된다. 싫든, 좋든 앞으로 20~40년은 더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은퇴를 하면 여행도 다니고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60세 전에 뭔가 만들어놓고 싶었다. 내가 하루를 여기에 꼬박 쏟는 이유다.
최근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상황을 한컷으로 그린 작품. 조수연 제공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처음엔 황당해 했다. 집사람은 웬만하면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황당해 하면서도 믿어줬기에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 아내는 공인중개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벌이를 시작한 큰 딸과 국비유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는 작은 아들이 있다. 카카오톡 가족 방에 그림을 올리고 얘기를 나눈다. 퇴직하면서 집을 팔고 남은 빚을 갚았다. 나름의 구조조정도 했다. 가족도 고맙고, 여기까지 오는데 도와준 사람이 많다. 다들 감사하다.
-은퇴한 시니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은 현업에서의 기억이 생생할 때 새로운 일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직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가겠나 싶다.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간 했던 일이 다 쓸모없어 보여도, 인생을 산다는 것은 뭔가를 쌓는 것이다. 직장생활하면서 술만 마셨노라고 말해도 술에 대한 노하우가 있지 않겠냐. 제2의 인생은 내 의지에 의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선택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다시 증권업계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굴레 없이 자유롭게 살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 불평불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나는 내 마음의 선장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그래픽 노블'을 해볼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증권업 쪽 내용이 워낙 어렵다보니, 일반 투자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도 필요한 분야다. 앞서 썼던 도이치뱅크 옵션쇼크와 관련해 그래픽 노블로 만들고 싶은 고민도 있다. 이 분야에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경제와 만화라는 두 분야가 가능하다는 점이 나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최종 목표는 연구소 설립이다. 이름은 '공정한 금융투자 연구소'다. 예전에는 '손님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생각으로 회사가 큰 돈을 못 벌어도 손님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게끔 금융회사가 운영됐다. 금융사 직원은 자산을 늘려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2000년을 넘어가면서 이익경영의 시대로 바꿨다. 고객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됐다. 평생 돈을 붓는 상품이 출시되고는 있으나, 직원들은 1년, 2년 만에도 구조조정되는 게 현실이다. 책임질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저금리에다 평균 수명연장으로 금융투자상품 재테크가 꼭 필요하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연구소를 생각했다. 초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싶다. 시스템적으로도 필요한 부분이다.
※ 조수연 약력 ▲고려대학교 경제학 석사 ▲대한투자신탁(현 하나금융투자) 입사 ▲투자분석부 이사 ▲홍보실 상무 ▲현 글로벌이코노믹 그래픽 저널전문위원
자신의 작업실을 드로잉한 작품. 조수연 제공
이정하 기자 l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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