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삼성의 눈덩이처럼 쌓인 유보금이 갈 길을 잃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오로지 배당 등 주주환원 용도로만 쓰여진다. 사상 최대실적 릴레이에 주가가 치솟아 주식을 쪼개는 상황까지 겉보기엔 화려하다. 이면에는 인수합병(M&A) 등 투자 동맥이 막혀 미래 성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삼성의 수심이 가득하다.
삼성전자는 31일 지난해 연간실적과 함께 재무상태를 공개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에서 자본금을 뺀 잉여금은 213조5939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말 192조655억원보다 11.2% 오른 수치다. 유보금을 납입자본금으로 나눈 자본유보율은 2016년말 2만2004.14%에서 2017년 들어 1분기말 2만2409.5%, 2분기말 2만2687.99%, 3분기말 2만3529.09%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그 사이 삼성전자는 잉여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즉시 소각하는 대규모 이익소각을 단행했고, 배당도 분기마다 집행하며 지출을 늘렸지만 자본과잉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자본 지출은 줄곧 이익 소각과 배당을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날 공개한 추가적인 주주친화정책도 결국은 배당확대로 귀결된다. 삼성전자는 전격적으로 50:1 주식 액면분할을 발표했다. 액면가가 줄어도 주식 수가 늘어나 액면분할 전후의 시가총액과 자본금엔 변화가 없다. 자본과잉 상태엔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보유 기회를 늘리고, 2018년부터 대폭 증대되는 배당 혜택도 공유·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례로 이날 삼성전자는 보통주 2만1500원과 우선주 2만1550원의 주당 기말 배당을 결의했다. 전년 보통주 2만7500원, 우선주 2만7550원보다 낮지만 주식 수가 늘어나면 배당 수령액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실제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의 50%에 달하는 5조8000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초 4조8000억원 집행 계획을 상향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9조2000억원 규모의 이익소각을 집행 완료했다고 밝혔다.
주주로서는 이같은 정책이 긍정적이지만 잉여금이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미래 성장과 관련된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삼성전자로서는 고민이다. 2016년말 80억달러(9조3000억여원) 하만 투자 결정 이후 삼성전자는 1년 넘게 대규모 M&A가 멈췄다. 그 사이 애플,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M&A 시장에서 활보하며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SK와 LG 등이 활발한 M&A를 추진하며 자회사의 사업영역과 연계되는 포트폴리오 관리자로 변모하고 있는 것도 삼성으로선 부러울 만하다.
사상최대 실적에도 성장 정체라는 변수에 직면해 삼성전자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한다. 결국 임직원들의 신경은 내달 5일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선고일에 온통 쏠려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장에 기초하지 않은 투자 판단은 대단히 위험한 결정”이라며 “재판부가 재벌에 대한 이중잣대를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만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지난해 연간 매출 239조5800억원과 영업이익 53조6500억원의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창사 이래 최대 성적표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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