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청와대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때의 문건들이 소위 대통령 기록물관리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면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금산분리 정책을 완화시킨다거나 삼성과 제일모직간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는 식으로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대가로 삼성이 정유라의 승마를 지원하게 하고, 미르와 K 재단에 천문학적 숫자의 금원을 지원하게 하였다는 혐의가 촛불집회 정국에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청와대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는 문건들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등이 중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300여건의 문서 외에 17일에는 정무수석실 인턴 책상에서 1361건의 문서가 나온데 이어,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 등에 있는 캐비닛 3곳에서도 박근혜 정부 문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청와대 내부 각 실의 캐비넷과 책상 서랍 등에서 문건들이 갑작스레 발견됨에 따라 어째서 하필이면 이 시점에 그다지도 많은 문건들이 나타났는지부터, 도대체 누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문건들을 만들었으며, 이 문건들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러한 문건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중요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등 해결해야 할 의문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문건의 존재 외에도 문건 발견 이후 청와대가 취한 태도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야당은 청와대가 문건의 발견을 계기로 생중계까지 요청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고, 특히 이렇게 발견된 대통령 기록물을 함부로 공개하고 특검에 제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한 꼼수라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와 같은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우선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것은 공개가 원칙이고 특히 비공개해야 될 자료라면 비공개 자료로 지정되고 분류되어야 하는데, 이번에 발견된 문건들에는 그러한 표식이 전혀 없어 비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판례상 결재권자의 결재가 없는 문서, 즉 최종본이 아닌 중간 과정 문서(결재를 위해 생성된)나 출력물 혹은 사본 등은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실제 이 문서들의 발견과정이나 유출 등이 적법했는지와 별개로 이 문서들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대통령 말씀자료’나 ‘안종범의 수첩’ 등이 직접 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만 인정된 상황에서 만약 이 문서들의 작성자가 확인되고 그 문서를 상부에서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면, 더 나아가 문서 내용대로 실제 어떤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직접증거로 작용하여 특검이나 검찰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 삼성의 현안을 파악하여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삼성 합병과 관련하여 국민 연금에게 행동 지침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들의 금원 급부 행위는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주장하던 이재용 부회장의 논리가 빈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문서를 발견하자마자 생중계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내용을 분석한 후 사본을 만들어 특검에 넘긴 청와대의 태도를 미루어 짐작컨대, 국정농단의 핵심 세력들을 엄단하고 톡톡히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촛불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고 확고한지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문서들이 지난 정권에서 미처 파쇄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남겨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남겨둔 것인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자라면 위로는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아래로는 청와대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와 정권의 누수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반면에 후자라면, 4년 내내 박근혜 정부의 왜곡되고 뒤틀린 정책기조 하에서 신음하던 수많은 숨은 양심들이 국민들과 새 정부에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자신의 직을 내걸고 체계적으로 항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결국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할 수 없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격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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