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공화정이 수립 된지 불과 70년이 지났건만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례가 벌써 3번째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전에 구속되었던 대통령들과 달리 임기를 마치기 전에 탄핵결정이 되었고, 그 직후에 구속된 것이라 우리 국민들에게 준 충격이 상당하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구 야당 측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며 법과 원칙의 엄정함을 기준으로 할 때 당연한 결론이라고 주장한 반면, 구 여당 측에서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유감을 표시하였다. 법 앞에 평등이 실현되었다는 주장이나 안타깝다는 주장은 아마 우리 대부분의 국민들 마음속에 공존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필자는 전자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우리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사에서 평등의 원칙은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통해 헌법에 수용된 이래 근대입헌주의 헌법에서 예외 없이 헌법상 최고 원리로 선언되고 있으며 우리 헌법도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으로 헌법 제11조에서는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등 어떠한 사유로도 불합리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반면, 우리 실생활에서 법 앞의 평등원리가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굳이 ‘유전무죄, 유권무죄’라는 냉소적인 단어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 서민들은 법이 ‘없는 자’와 ‘가진 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불신을 야기한 것은 올곧이 가진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금번 국정농단의 한 축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 삼성의 오너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기보다는 뇌물수수, 탈세 등 온갖 편법과 위법이 동원되었다는 의혹이 만연하다. 정부가 일반 월급쟁이들의 쥐꼬리만 한 월급봉투에는 빠짐없이 세금을 부과하면서 초일류 대기업의 경영승계과정은 한 없이 관대한 것이다.
CJ, SK 오너의 특별사면과정은 어떠한가. 1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뇌물이 거래되어 사면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수형자의 경우 꼬박 형기를 마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가 아닌가 싶다.여기에 최순실 등 국정농단의 주범들이 박 전 대통령과 공모 또는 그를 이용하여 온갖 특권(자식이 특혜로 대학에 입학하는 등)을 누렸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반 서민들은 지난 수 개월간 언론 기사를 접하면서 분노를 감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평생 집권여당을 지지했다는 분들이 난생 처음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낯설게만 들리지가 않는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이유로 파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속 되었다. 더욱이 단 한번 도 구속된 적이 없었던 삼성가의 실질적인 오너도 구속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적법절차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법을 위반해서 공직자가 파면되거나 기업가가 구속되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대통령과 삼성가의 실질적인 오너가 대상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사례로 작용될 수 있다. 이제야 법 앞의 평등이 실질적으로 구현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그것이다.
지난 겨울 1600만명(주최 측 추산)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수차에 걸쳐 거리에 나섰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것을 단지 대통령과 국정농단 주역들을 처벌하라는 목소리로만 좁게 해석한다면 차기 정권 역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개혁, 적폐청산, 사회통합 등 다양한 시대적 과제가 정치권에 주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법치주의’와 ‘법 앞의 평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치권은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구속 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경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1960년 4월, 1987년 6월 이후에 아픈 역사를 경험한 기억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법무법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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