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58화)70년대 사람들⑨ 민주인권일지 사건
“꽃이 피건대 / 화사한 것만이 꽃이겠는가”
입력 : 2017-03-20 08:00:00 수정 : 2017-03-20 08:00:00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파업투쟁으로 해고당하고 복막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지난 3월11일 20차 촛불집회에서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사회적 적폐청산은 검찰과 언론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검찰과 공영언론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이 그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래야 그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바로 선다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기관을 아래로부터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그의 발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언론·특검·헌법재판소의 활동이 어떻게 국민에 의해 추동되었는지를 생각해볼 때, 매우 공감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표창장
2016년 10월24일 프레스센터에서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식’이 개최되었다. 1974년 10월24일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맞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지 42년이 되던 날, ‘언론주권자’인 시민들과 언론인들이 함께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2017년 3월17일, 42년 전 그날(1975.3.17) 새벽 술 냄새를 풍기며 해머·각목·쇠파이프를 들고 쳐들어 온 200여 명의 폭력배들에 의해 구타당하며 쫓겨난 기자·피디·아나운서·기술인들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결성(1975.3.18)한 지 42주년을 맞아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와 동아투위가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이 당시의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렸다. 이 현장에서, 동아투위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해동 목사는 대부분 30대에서 70대가 되었으나 자유언론에 대한 열망으로 여전히 푸르른 청년이자 언론정신의 산 역사인 이들을 가리켜 “역사의 밀알로 42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고 했다.
 
1975년 4월1일 동아일보 창간 55주년을 맞아 회사가 기념행사로 장기 근속자에 대한 시상식을 거행하는 동안, 동아투위는 독자적인 기념식을 열어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진다. 한편 이 기념식에 관련된 특별한 표창장들이 조성숙, 박종만 동아투위 위원들에 의해 기증되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힘든 상황을 해학으로 승화한 동아투위 사람들의 재치가 엿보인다. 동아투위의 ‘진동아(眞東亞)’ 표창장들은 다음과 같다(‘진동아’는 동아일보 기자들이 제작거부 투쟁과정에서 '가짜 동아일보'에 대항해 만든 신문의 제호이다).
 
<일망타진상> “귀 부서는 치욕의 3월17일을 기해 부장 이하 모두가 일심협력 끝에 일망타진되어 동아일보 사옥에서 쫓겨나왔기에 그 똘똘뭉침이 가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금단추아차상> “귀하들은 모가지만 성했더라도 창간축회 금단추 및 금반지를 수여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을 자유언론 제단에 바쳤기에 이에 표창합니다.” <진수성찬아사직전상> “귀 팀은 동아일보사 2층 암굴에서 만 닷새 동안이나 보리차와 소금을 포식하면서도 서로 잡아먹지 않은 지성이 가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단식투쟁을 한 기자들에게 주어진 상) <팔자기구상> “귀하들은 매년 춘삼월만 되면 실업자가 되어버리는 초악질분자들로서 처자식의 생계를 한오쿰도 고려하지 않는 반가정적 범죄는 준엄하나 그 팔자기구함이 무궁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아담즈 애플(일명 울대)상> “그대는 소싯적에 하우스보이를 약간 역임했다는 경력 하나로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차지한 뒤 사사건건 핏대를 새우고(세우고) 목의 혹을 불룩거리면서 특히 3월12일 아침 총회에서 이관선(官選) 주필에게 자유언론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할 것이라는 확신 아래 쫓겨나온 공로가 가상하여 표창합니다.” 마지막 표창장의 이관선(官選) 주필은 이동욱 주필이고, 이 상을 받은 사람은 재야민주화운동과 제도권 정치를 두루 거친, 당시 정치부 기자였던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으로, <만인보>에 따르면 “과일 씨처럼 / 보이지 않으면서” “감옥 안에서도 / < … > 일을 만들어 밖으로 내보”내(‘이부영’, 12권) 결국 자신의 옥중메모로 1987년 초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축소·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외부에 알린 인물이다. 42년이 지난 오늘, 이 특별한 표창장의 주인공들이 진정으로 받아야 할 표창장은 언제 당도할 것인가?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 위원회 결성 42주년 기자 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민주인권일지 사건
1978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 기념일에 배포된 <동아투위소식>에는 제도언론에 의해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사건 일지’ 125건(1977년 10월~1978년 10월)이 실렸다. 동아투위는 또한 그 앞에 ‘진정한 민주·민족언론의 좌표’라는 성명을 실어 “자유언론을 압살하는 모든 제도와 법이 당연히 철폐되어야 함”을 천명했다. 이로 인해 24일 밤부터 며칠에 걸쳐 10명이 연행된다. 그들 중 안종필 위원장·홍종민 총무·안성열·장윤환·박종만·김종철 위원이 구속되었고, 후에 정연주 위원까지 구속되어 구속자 수는 7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이들을 4개의 사건으로 분리해서 기소했는데, 공소장에는 ‘다른 사람이 낭독하는 성명서를 눈으로 따라 읽음으로써 유신헌법의 폐지를 주장했다’는 황당한 내용도 있었다. 이것이 ‘제1차 민주인권일지 사건’ 즉 ‘민권일지 사건’이다. <만인보>에는 그들 중 몇몇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놀란 짐승의 눈인가 똥그랗다 착하디착하다
< … >
아무리 뒤져도 뒤져 낼 악의가 없는 눈인가
그런 눈으로
서울 청진동에 있다가 화곡동에 와 있다가
 
영등포 여공들의 수고 많은 짐 지고자
원풍모방
상고사
동일방직 사건들의 대책을
뒤에서 밀어올린다
 
해직기자지만 해직기자로 연연하지 않고
노동운동에 쏟아부은
그의 정성이
그의 뒷모습을 만든다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사람
하얀 얼굴에
어쩌다 분꽃 피어나
중국 황하 하류의 새해 아낙 같기도
아니 몽골 미녀 같기도
몽골 풀밭 같기도
(‘안성열’, 14권)
 
청진동의 동아투위 사무실에서 화곡동의 고은 시인 집―당시 민주화운동가들의 아지트와 같았던 곳―을 방문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지원을 토론하는 한 해직기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는 2011년 3월17일, 그가 36년 전 자유언론을 외치다 쫓겨났던 바로 그날, 유명을 달리했다.
 
잘 보이지 않는다
법과대학 다녔으나
저만치
농과대학 다닌 듯하다 어쩐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섭도록
견고한 목각 속의 신념
 
< … >
 
말소리도 크지 않아 잘 들리지 않는다
큰소리
허황된 소리도 있으련만
그런 소리 하나도 없는 가난한 얼굴
실전보다 작전이 필요할 때
그가 없는 듯
슬며시 문 열려 들어와 있다
(‘박종만’, 14권)
 
남편은 2년간 동아투위 총무를 맡았고 아내는 출판사 임시직으로 가계를 꾸려나갔다. 아내가 그 임시직마저 잃게 되자 부부는 결혼반지, 아들 돌 반지 등 집안에 있던 금붙이를 모두 팔아 쓰고 13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2평짜리 스낵 가게를 열었다가 폐점하기도 한다. 197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산하 인권위원회에서 일하던 남편이 구속되자 아내 역시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인권위원회 감사 / 박종만의 아내지만 / 누구의 아내라는 것도 / 그 자신의 이름도 내세우지 않”고 “한땀 / 한땀 바느질 잘한 솔기처럼 적이 꼼꼼”히 일하며(‘윤수경’, 15권) 옥중의 남편과 함께 한 아내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동아투위 위원들과 함께 고난의 시간을 겪은 것이 그들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동아투위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활고로 인해 각종 직업을 전전하거나 오랜 실업자의 생활을 살았다. 1977년 서른넷의 나이에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아방송 피디 조민기 위원의 경우, 해직당한 후 아내와 함께 새벽시장에 나가 옷가지를 떼어다 팔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종각번역실’에서의 공동번역작업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일이었겠으나, 번역된 책을 지인들에게 팔러 다녀야 할 때의 곤혹스러움을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투위 위원들이 쓴 글을 보면, 참기름집 공동창업을 구상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파이프 가게와 알로에 점포를 하다가 빚을 지기도 하고, 회사의 사보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곳에서 기관원의 감시를 받았다.
 
썩지 않는 사회를 위한 ‘자유언론실천’
동아투위는 1978년 12월27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인사들의 송년모임에서 <동아투위소식>을 배포한다. 여기에 실린 ‘자유언론은 영원한 실천과제’라는 글이 긴급조치 9호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1979년 1월9일 윤활식 위원장대리·이기중 총무대리·성유보 위원이 연행되고 1월15일에 구속되는데, 이것이 ‘제2차 민주인권일지 사건’이다. 이로써 민권일지 사건으로 구속된 동아투위 위원은 총 10명이 되었다.
 
속으로
속으로
치열하지만
겉으로는
미적지근한 물에 담근 두 발인 듯
가만히 굴절되어 있다
 
한번도 거짓말을 해보지 못했던가
한두 마디 말도
차라리 서툴고 아까워
다시 입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꽃이 피건대
화사한 것만이 꽃이겠는가
이렇듯 적막한 것
열번이나 꽃 아니겠는가
 
정녕 싸웠는데 싸운 자취 없다
< … >
(‘성유보’, 12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에서 자유언론과 남북통일을 꿈꾸며 활동하던 성유보 위원은 2014년 10월8일 별세했고, 2017년 2월7일 오정환 위원의 별세로 동아투위 위원 113명 중 스물여섯 분이 세상을 떠났다. 민권일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분들 중에는 홍종민 위원까지 네 분이 유명을 달리 했다.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안종필 위원장의 경우, 1979년 10·26 박정희 피살이 가져온 유신체제의 몰락으로 다른 동아투위 위원들과 1년여 동안의 옥고 끝에 풀려났지만, 옥중에서 발병한 간암을 진단도 치료도 받지 못해 출옥 후 세 달이 채 못 된 1980년 2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마니 이 원통한 죽음은 유신정권의 타살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듣고 보고 말하지 못하면 미치고 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자유언론이 보장되지 않으면 썩고 미치고 맙니다.”라고 말한 그의 법정진술은 지난 수년간 민주주의 역행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사회가 썩고 미치지 않기 위해 각인되어야 할 것이다.
 
니힐!
 
지리산 천왕봉은 아득한 이웃이되
자주 내려와
논 가운데 실상사 언저리
남원 실상사 언저리에 나와 있는
한 소년의 이마에 닿았다
그런 소년으로 자란
장윤환
 
법과대학에서는 홍성우와 동기였다가
하나는 사법고시
하나는 신문기자가 되어
기자 장윤환은
내내 남원의 그 진한 풍류가 가뭇없이 따라다녔다
 
어눌해서
한꺼번에 주어와 동사 목적격이 쏟아지는 사람
그래서 실정법보다
법철학에 가까웠다
법학보다 가야금 산조 머금은 밤중에 가까웠다
 
그의 간밤 폭음 뒤의 오늘 아침
게슴츠레한 그 머루눈 지그시 감으면
그의 허전한 어깨와 뒷모습에 너울거리는
니나노 같은 선의 빛난 뒤
 
남아서 빛나는 것은 싱긋
도금 이빨의 순진무구한 웃음과 회한 싱긋
 
< … >
(‘장윤환’, 13권)
 
1960년 4월19일 동아일보사 앞 세종로를 가득 메운 데모대의 일원이었던 그는 보도를 위해 길을 터달라는 젊은 동아일보 기자의 외침에 시민들이 바닷물처럼 갈라지며 취재차량에 길을 터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언론인이 자유언론을 주장하는 것은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민주공화국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언론인으로서 자유언론을 주장하다가 황당하게도 감옥으로” 오게 되었다(1979년 7월25일 항소심 법정 최후진술 녹취록).
 
동아투위 사람들에게는 언론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자유언론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회가 질식해 죽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오늘, 권력에 부역하는 ‘무늬만 언론인’인 자들은 언급될 가치도 없겠으나, 언론사의 ‘직원’으로서 사는 것에 익숙한 많은 젊은 언론인들에게는 현재도 그의 동료들이 해직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박성호 MBC 해직기자의 표현대로, 후배들에게 ‘길라잡이’이자 ‘방패’가 되는 동아투위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하자고 당부하고 싶다.
 
동아투위 결성 4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봉준 작가의 기념판화 깃발에 서명하는 투위 위원들. 사진/필자 제공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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