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민사소액사건 범위가 대법원 규칙개정으로 내년 1월부터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규칙 개정 과정에서 논의 파트너인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에 허점이 드러나 결국 국민의 사법정책 참여기회가 박탈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일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소액사건 기준을 20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소액사건은 전체 민사(본안)사건 100만건 중 70만건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은 서민 경제와 직결되는 사건이다.
현행 기준은 1998년 3월1일 적용된 것으로 19년만의 개정이다. 그동안 소액사건 기준이 적용 초기에 비교할 때 물가와 국민소득 수준 등을 고려할 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대법원은 소액사건 기준을 확대하면서 이 같은 지적과 함께 민사본안사건 중 소액사건 비중이 2003년 78.%에서 2015년 69.8%까지 하락한 점, 재판이 소 제기 후 6개월 이내에 82.5%가 해결되면서 항소심 파기율이 0.3%에 불과한 점, 법관경력 10년 이상의 법관들이 소액재판장 중 57.3%를 차지하면서 서민의 고분쟁성 사건들이 충실히 심리되고 있는 점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소액사건 기준 상향 서민생활과 직결
이에 대해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회장 최재호 인천지방변호사회장)는 지난 23일 소액사건 확대를 위한 대법원규칙 개정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소액사건심판법상 2000만원 이하의 사건은 법관이 판결문에 이유를 기재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고, 사실상 상고심이 제한되고 있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침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는데 사건 금액 기준을 3000만원으로 확대하면 그만큼 더 많은 국민들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소액사건 기준을 3000만원으로 확대하는 것은 법원의 업무경감 효과만 있는 것이지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는 이와 함께 심판규칙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제대로 구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뉴스토마토> 취재결과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지적 중 대법원이 변호사단체 의견을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해로 확인됐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안일한 태도가 그 원인이다. 대법원과 대한변협,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논란의 발단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법원, 대한변협과 처음 논의
대법원은 소액사건심판에 대한 개선 방향을 ‘재판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논의했다. 협의회는 충실한 재판을 구현하기 위해 대한변협과 함께 구성한 실무차원의 상설협의체로, 지난 6월4일 발족했다. 이후 6월8일 1차 회의를 거쳐 7월4일 2차 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회의에서 대법원은 사법정책연구원이 6개월간 연구·검토해온 소액사건심판 개선방안 등을 안건으로 제시했다. 여기에서 소액사건 기준 금액을 3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처음 논의됐다. 회의에 참석한 대한변협 관계자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구두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7월12일 ‘소액사건심판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을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입법예고했다. 2차 회의에서 논의된 소액사건의 범위 상향조정안이 주 내용이었다. 의견청취 기한은 8월1일까지였다. 이와는 별도로 이해관계 기관·단체인 법무부와 대한변협, 대한법무사협회, 민소소송법학회에 의견조회 공문을 보냈다. 이 중 민사소송법학회를 제외한 3개 기관·단체가 회신을 해왔다. 대한법무사협회는 찬성의견을 보냈으며, 법무부와 대한변협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공문을 통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대한변협은 7월29일 발송한 공문에서 반대의견과 함께 두 가지 신중검토의견을 보냈다. 첫째는 3000만원으로 소액사건 기준 금액을 상향할 경우 판결문에 판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사건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었고, 둘째는 소액사건의 상고가 사실상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기준금액이 상향되는 만큼 상고제한을 받는 사건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두 의견 모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침해에 대한 문제였다. 법무부의 의견도 같았다.
대한변협, 반대 표명 후 공론화 안돼
대법원은 이를 반영해 소액사건도 피고가 다투는 사건은 판결문의 이유에 “주문에 인용된 청구를 특정함에 필요한 사항”, “주문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공격방어방법의 판단 요지” 등을 간략하게 기재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보완책을 마련해 법무부와 대한변협에 회신했다. 입법예고 기한이 지나고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이해관계 기관·단체가 없자 대법원은 지난 11월 소액사건 기준금액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으로 대법원 규칙 개정을 마치고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한변협이 취한 태도다. 대한변협은 이 같은 진행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임이사회에서만 거론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원으로 등록된 전국 변호사들은 물론 각 지방변호사회장에게까지도 전혀 알리지 않았다. 일반 변호사들은 물론 전국 지방변호사회장들도 소액사건에 관한 대법원규칙 개정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부협회장들 통해 공지된 것으로 안다"
물론, 이에 대한 대한변협의 반론이 있다. 복수의 대한변협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보고된 상임이사회에는 각 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부협회장 자격으로 참여를 했고, 그들을 통해 지방변호사회에 소액사건 기준금액 상향조정 움직임이 공지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 변호사법상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대한변협규칙에 따라 5인 이상 10인 이내로 둘 수 있으며, 현 48대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총 10명이다. 이 중 서울 아닌 지방변호사회 소속 부협회장은 대전과 충북, 대구, 광주, 울산 등 5명이다. 총 14개 지방변호사회의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모두 전직 회장들로, 대한변협 상임이사회 보고내용을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최재호 전국지방변호사회장 협의회 회장은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대법원이 대한변협의 의견도 듣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의 제기한다고 대법원이 말 듣나"
사건의 심각성은 이번 대법원규칙 개정이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데도 정작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데 있다. 대한변협이 대법원규칙 개정이 처음 논의된 지난 7월 이 문제를 공론화 했다면, 시민단체 등 보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한변협의 안일한 태도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나 사법정책 참여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대법원 규칙 개정은 대법원이 전권을 가지되 ‘재판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하고 있다. 사법부나 정부 부처가 아닌 민간단체로서 대법원의 규칙 개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단체는 대한변협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변협은 소액사건심판제도 개선과 관련한 공개적 성명서나 논평을 발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변협 관계자는 “우리가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대법원이 말을 들을 단체냐”고 말했다.
"대법원 적극적 홍보 아쉬워"
대법원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한 지방변호사회장은 “대법원 규칙개정 때마다 공청회를 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적어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한변협 외에 일반 국민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언론도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대법원 관계자는 소액사건 기준금액 상향을 단순히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인 것에만 주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분쟁이 있는 소액사건심판에서는 판시 이유를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고, 개정된 대법원 규칙이 발효되는 내년 법관정기 인사 때에는 소액사건만을 전담으로 담당하는 재판부를 증설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액사건심판에서 승소한 서민들에 대해서는 재산조회 요건을 완화해 채권을 빨리 회수할 수 있도록 조력할 계획”이라며 “이런 내용을 담은 강제집행 특례제도 입법화 작업에 이미 착수해 의원 입법발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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