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으로 투자하라고?…"부자정책이라 전해라"
금융위, '전세 보증금 투자풀' 대통령 업무보고서 밝혀
고가 주택 세입자만 이용 가능…오히려 전세값 인상 전망
2016-01-14 16:18:35 2016-01-14 16:30:32
정부가 올해 내놓는 '전세 보증금 투자풀(pool)'이 오히려 집주인 등 속칭 가진자들의 배만 불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민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자정책이 또 나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상품은 세 들어 사는 임차인이 전세에서 반전세·월세로 전환해 돌려받은 보증금을 투자풀에 최소 1년에서 최대 30년 등 장기간 맡기면 연 4% 수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전세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임차인이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 보증금이 많을지 의문인데다, 세입자들이 대부분 대출상환 압박이나 생활비 마련이 급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품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할 것이란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제도가 활성화돼 전세의 월세 전환이 촉진되면 집주인과 투자풀에 모인 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 기금의 투자 대상인 기업 배만 불릴 것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4일 금융위원회는 '올해 대통령 제1차 업무보고'에서 전세 보증금 투자풀 등을 연내 선보여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금융위는 이번 계획이 저금리·저성장에 따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 이익을 추구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돌려받은 전세 보증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곳이 마땅찮은 세입자들이 많은 현실을 고려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근거로 전체 임차가구 중 월세·보증부 월세 비중은 지난 2008년 45.0%에서 2014년 55.0% 등 급증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같은 현실을 외면한 제도의 실효성이다. 전셋값이 치솟고 있는데 집 없는 임차인이 월세 전환에 따라 돌려받은 보증금을 집이 아닌 곳에 투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투자는커녕 추가로 대출도 못받고 있는 세입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작년 12월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3억78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5936만원이나 올랐다. 또한 전월세 전환율이 현재 7% 수준이므로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 시도에 따른 전세 물량 감소로 전세값은 더 오를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은 품귀 현상에 따라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을 촉진해 집 없는 서민에게 월세 부담을 추가로 안기면서 집주인의 월세 수익 추구를 도와주는 셈이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위는 "전세 보증금 투자풀이 임차인의 전세 선호현상을 완화시켜 전셋값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처럼 정부가 시장 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은 부작용이 늘 나타나는데, 자산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효과가 꽤 다를 전망"이라며 "1억~2억원 전세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대출을 받아서 사는데, 이는 사실 갚아야 할 돈이어서 장기간 묶어두고 투자하기보다는 상환하거나 생활자금에 쓰는 게 나을 것이고, 반대로 집이 있으면서 10억원짜리 전세에 사는 경우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어 3~4% 수익률은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차인이 맡기는 보증금이 뉴스테이 임대사업이나 도시·주택기반시설, 채권, 펀드 등으로 이동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집 없는 서민으로부터 받은 돈이 금융사나 부동산 기업의 이익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보증금을 맡긴 임차인에게 3~4%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면 이를 운용하는 회사는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 고수익을 보장할수록 위험도 크지만, 운용자의 일부 손실 흡수방안 외에는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보증금 보호 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펀드나 뉴스테이 같은 데 운용하겠다는 걸 보면 서민의 자금을 끌어들여 정부와 금융권, 건설사 등 기업 이익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취지가 커 보인다"며 "게다가 전세 보증금인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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