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그의 인생사는 대한민국 정치사와 궤를 같이했다. 그런 그의 정치 인생에서의 공과는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뚜렷하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문민정부의 첫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함께 외환위기를 부른 무능한 경제 지도자라는 수식어가 그를 항상 따라다녔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초래했던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 등은 대표적인 과오로 꼽히지만 군부 세력 청산, 금융실명제 등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의 중요한 개혁 과제들을 현실화한 것은 향후 업적으로 평가받을만한 대목이다.
특히 대통령 재임 중에 군부내 정치세력인 ‘하나회’의 싹을 완전히 끊어냄으로써 정치 군인들의 토대를 허물어 내고 이후 민주정부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이는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군부정권의 정치 참여를 종식시키고 향후 부활의 가능성도 제거하는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현대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이뤄낸 업적 중 눈에 띄는 것은 금융실명제 실시다. 그는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어 부정부패를 막고 공정하게 과세를 하는 이른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강행했다. 이로써 지하·음성거래를 양성화하고 검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김 전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비리를 차단하고자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 도입을 위해 솔선수범했다. 이 외에도 그는 1991년 이후 실시되던 지방자체제도를 확대해 1995년 7월부터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면서 지방분권의 첫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권 마지막 해인 1997년의 외환위기 사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 전 대통령은 금융기관의 부실, 방만한 경영을 해온 대기업의 연쇄부도와 단기외채의 급증 등으로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 위기에 이르자 1997년 12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 사실상 경제주권을 내줘야 했다.
아울러 집권초기부터 구설수에 올랐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친인척 및 측근들의 부패는 정권에 치명타를 입혔다. 또 김 전 대통령이 1990년도에 ‘3당합당’을 선언하면서 야당의 중요 거점이었던 부산·경남을 여당의 텃밭으로 만들고 호남을 고립시킨 점은 여전히 정치사에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사진은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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