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노키아, 샌디스크, 어도비…. 세계적으로 유명한 ICT 기업인 이들의 공통점은 수장이 인도인이라는 점이다. 인도 출신 경영자의 활약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마스터카드, 도이치뱅크 등 금융권과 펩시, 레킷벤키저 등 소비재 산업에서도 인도인 최고경영자(CEO)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포춘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CEO 10명 중 3명꼴로 인도 출신이었다. 스위스나 영국 출신 비중과 견줄만 하다.
'인디아 마피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인도 출신이 경영자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들이 성장한 인도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본적인 언어 능력과 다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공존의 정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 등이 오늘날의 이들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1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인도 출신 CEO들을 집중 조명하며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최고경영자들"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인물은 세계 2위 식음료 업체인 펩시를 5년째 이끌고 있던 인드라 누이였다. 마스터카드와 유니레버를 각각 지휘하던 아자이 방가, 빈디 방가 형제도 인도가 낳은 대표적 경영인으로 꼽혔다.
4년이 지난 현재 인도의 수출품은 더 늘었다. 지난해 5월 노키아 CEO로 선임된 라지브 수리에 이어 올 2월에는 사티아 나델라가 MS 수장에 올랐고, 가장 최근에는 순다 피차이가 구글의 CEO로 발탁됐다.
<글로벌 기업의 대표적 인도 출신 CEO>
12억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에서 뛰어난 인재를 다수 배출하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인구 대국인 중국에서 자국 기업을 제외한 유능한 경영인을 찾기 힘들다는 점은 인도인만의 특별한 유전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인의 성공을 유도한 제일의 요인이 '영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인도는 과거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 중이다. 영어가 글로벌 비즈니스 언어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로 서방 국가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중국과 한국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유능한 인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인도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 데에는 영어의 영향이 크다는 데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헤드헌팅 전문업체인 이곤젠더인터내셔널의 질 아더 대표는 "인도인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뿐 아니라 영어로 사고를 한다"며 "서구 문화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익숙…임기응변도 뛰어나
인도 출신 인재들에게 영어는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었다. 수 많은 인도 사람 중에서도 이들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돼 그 속에서 '성과 제일주의'라는 생존법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차이, 나델라 등 인도인 CEO들은 대체로 인도에 학력 배경을 두고 있다. 훗날 미국에서 석사나 MBA 학위를 받았지만 인도공과대학(IIT), 인도 마니팔 공과대학, 인도경영대학(IIB) 등 인도에서 명문으로 손 꼽히는 학교에서 수학했다. 미국의 하버드나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보다 인도 대학을 더 높게 치는 인도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또 이들은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기 전 인도 현지 회사에서 글로벌 공룡들과 경쟁을 했던 경험도 있다. 수 만 명과의 경쟁이 일상이었던 인도 엘리트들에게 글로벌 기업 내에서의 경쟁은 그다지 큰 장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20세기 후반 가속화된 인도 경제의 자유화 분위기는 스스로의 능력에 기반해 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형성해 줬다.
인도의 열악한 경제 환경 역시 인도인 CEO를 배출하는 자양분이 됐다. 인도에서는 경제의 불균형적 발전으로 기본적인 인프라가 안갖춰진 곳도 많고 소득 격차도 커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대처하는 높은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하다. 중국이나 브라질 등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도 제한적이라 이를 극복하려는 순발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타임지는 이 같은 능력을 '주가드'(jugaad : 예기치 못한 위기 속에서 즉흥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뜻하는 힌두어)라 칭했는데,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항상 플랜B와 플랜C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자이 방가가 네슬레 인도법인 근무 시절 초콜렛을 팔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는 주가드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섭씨 38도를 넘나들던 여름철 냉장 설비와 전력 공급망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냉장 카트와 수송 차량, 창고 등을 특별 제작해 품질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의 형인 빈디 방가의 창의력도 뒤지지 않았는데, 유니레버 제품을 보급하기 위해 직업이 없는 여성들을 판매원으로 고용하는 신의 한 수를 뒀다. 광고에 공을 들이는 대신 이들을 통한 구전 마케팅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회사는 유통망을 확보하는 발판이 됐다.
◇다문화·다종교 사회에서 비롯된 공존 정신
인도의 사회적 분위기도 글로벌 CEO 양성에 기여했다. 힌두교도가 전체의 80%를 차지하지만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힌두어와 영어 외에도 10여 개의 상용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인도이기 때문이다. 타임지에 따르면 인도 출신 경영자들은 다문화·다종교·다언어 사회에서 자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데 익숙하고 타인과 타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높은 편이다. 다름을 쉽게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데 능하다는 것이다. 나델라가 MS CEO로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회사 내에서 경쟁사인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도록 허가한 것은 인도 사람의 포용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한 장면이다. 구글 임원 출신인 니케시 아로라가 외국인 경영자에 다소 폐쇄적인 일본의 소프트뱅크 후계자로 지목될 수 있었던 데에도 인도인의 포용력과 적응력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더 나아가 이는 조직원과의 감정적 연대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누이 CEO는 직원들이 업무 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것을 적극 장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에게도 회사 밖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회사가 그들을 4567명 중 하나가 아닌 개개인을 온전한 삶의 주체로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서 그의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미국 뉴햄프셔대학의 조사 결과 리더십 특성 부분에서 인도 출신 경영자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점도 연장선상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 결과 인도 경영자는 미래지향적이고 겸손하면서 전문가적 의사를 전달하는데 능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 출신 CEO들은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발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대부분 10~20년 가량 근무하며 바닥부터 착실히 경력을 쌓아왔다. 기본적인 실력 외에 인성이 부족했다면 이루기 힘들었을 일이다. 나델라는 1992년 입사해 MS의 세 번째 리더가 되기까지 22년이 소요됐고, 수리 역시 20여년간 근무하며 노키아 솔루션&네트웍스의 성공적 재건 등의 업적을 발판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가장 최근 인디안 클럽에 합류한 피차이도 2004년 구글에 입사해 웹브라우저 '크롬' 개발에 참여하고 구글 툴바, 구글 팩, 구글 기어 등 검색과 소비자 제품을 총괄하는 역할을 두루 수행했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피차이를 CEO로 선임한 후 "피차이는 능력도 출중하지만 인격은 더 훌륭하다"며 "그와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블로그에 적은 것은 피차이가 CEO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칼럼을 통해 "인도 출신 CEO는 자신의 분야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다양한 각도에서 조직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진단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