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유근윤 기자] 경기도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특혜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양평군 공무원 정모씨 유서엔 김건희특검의 강압수사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글이 가득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무려 21장에 달하는 유서엔 '특검의 강압수사로 사실이 아님에도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라고 증언해야 했다'는 취지의 내용과 함께 이를 괴로워하는 심경이 담겼습니다. 이는 기존에 공개됐던 1장짜리 메모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에 따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양평군지부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유족의 요청을 받아 고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순직신청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양평 공흥지구 의혹은 김건희씨의 모친 최은순씨가 ESI&D를 통해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양평군청으로부터 개발부담금 축소 등 특혜를 받았다는 겁니다. 특검은 당시 군수였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등 윗선의 지시로 양평군이 김건희 일가에게 특혜를 줬다고 의심했습니다. 고인이 된 정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10월2일 특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0일 '강압수사'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양평군 공무원 정모씨가 지난 10월2일 김건희특검에서 조사를 받고 남긴 자필 메모. 그는 10월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여현정 양평군의원 페이스북 캡처)
8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정씨의 유족은 지난 1일 양평군 공무원노조와 만나 공개하지 않던 21장 유서를 건넸습니다. 아울러 고인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순직을 신청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노조는 이달 중 해당 유서를 근거로 진상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습니다. 진상조사가 끝나면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공개할 예정입니다. 또 이 보고서를 근거로 순직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씨가 남긴 21장 분량의 유서엔 고인이 특검의 조사를 받고 돌아온 10월3일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인 10월9일까지의 상황과 심경이 담겼습니다. 유서의 요지는 양평 공흥지구 개발의 개발부담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없었으나, 특검 조사 당시 수사관 3명이 돌아가면서 압박해 수사를 하다 보니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라고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술한 부분을 후회한다는 뜻도 담겼습니다. 21장 중엔 가족과 친구에게 남기는 편지도 포함됐습니다.
이는 앞서 공개된 메모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김선교 의원 측이 고인의 사망 당일(10월10일)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고인은 "너무 힘들고 지친다. 이 세상을 등지고 싶다"며 "(특검이) 사실을 말해도 계속 다그친다. 사실을 말해도 거짓이라고 한다"고 적었습니다.
김건희특검의 박상진 특검보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특검 사무실에서 양평군 공무원 사망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중배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뉴스토마토>에 "사실과 다른 각종 의혹 제기로 유족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상규명을 통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유사한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된 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경우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언급한 '사실과 다른 각종 의혹'이란 고인의 유서와 메모에 대한 진위 논란입니다. 경찰은 고인의 집에서 유서를 발견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감정을 요청했고, 줄곧 진위 여부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김선교 의원이 고인 사망 당일 고인이 남긴 메모를 공개하면서 진위 논란은 더욱 불붙었습니다. 김 의원은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 과정에서 김건희씨 일가에 특혜를 준 장본인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데, 그가 공개한 고인의 메모엔 '김 의원의 지시가 없었다'는 취지로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국과수는 지난달 11일 필적 감정 결과 유서는 고인의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고인의 사망 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일 "(특정 수사관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고인에게 의무 없는 특정 내용의 진술을 강요해, 객관적으로 사건을 수사하여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수사관으로서의 직무를 일탈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고인 죽음의 배경을 두고선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한편, 특검은 지난 11월27일 양평군 공무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강압적인 언행 금지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 5개 항목에 대해서는 규정 위반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시간 조사제한 위반 △심야조사제한 위반 △비밀서약 관련 위반 △휴식시간 부여 등 위반 등은 규정을 위반한 게 없었다는 취지입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