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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우리는 복면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2015-06-03 13:33:26 2015-06-03 13:33:26
요즘 MBC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이 인기다. 가수들이 얼굴에 복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인데 출연진이 다양하다. 가수 뿐만 아니라 배우, 코미디언 등이 출연한다. 얼굴에 복면을 쓰니 판정단과 시청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계급장을 떼고 노래로만 한판 붙는 거다. 출연진은 본명 대신 '황금락카 두통 썼네', '딸랑딸랑 종달새',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가명을 사용한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출연자가 노래를 부른 뒤 복면을 벗는 순간이다. 복면을 벗은 출연자의 얼굴에선 여러 감정이 느껴진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도 있다.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 EXID의 솔지도 울었고, 에프엑스의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 가수로서 오로지 노래만으로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울컥했을 것이다. 또 인기를 얻기 전의 무명 시절의 기억도 머릿 속에 스쳐지나갔으리라.
 
특히 눈이 가는 것은 대중들에게 잊혀졌던 가수들의 출연이었다. 박학기, 진주, 권인하와 같이 요즘 좀처럼 TV에서 볼 수 없었던 실력파 가수들이 '복면가왕'을 통해 부활했다. 대중들은 이들이 얼굴을 내놓고 무대에 섰을 때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줬다. 대중들은 목소리와 노래만으로 이들을 평가했고, 그건 다 얼굴에 쓴 복면 덕분이었다.
 
방송인 홍석천의 출연도 재밌었다. 홍석천은 '철물점 김사장님'이라는 가명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철물점 김사장님'이 홍석천이라는 것을 대중들이 처음부터 알았다면 과연 그의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줬을까. "편견에 부딪혀서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 중 하나다. 겉모습이나 그런 것 말고 진실한 모습을 알려고 하면 또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와닿는다. 홍석천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지 처음 알았다.
 
16년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다. 소속 연예인을 관리하고, 그들이 성공하는 데 뒷받침이 돼주는 것이 매니저들의 임무다. 그동안 많은 연예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지만 힘든 일도 많다. 연예계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고, 부와 명예를 손에 쥐는 연예인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소문 없이 잊혀져가는 연예인들이 훨씬 많다.
 
현재 국내에는 수많은 매니지먼트사가 운영 중이다. 한국매니지먼트협회의 회원사가 250여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실질적으로 수익을 내고,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상위 1~2% 정도 될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매사에 이름값이나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많다. 유명 스타들을 보유한 대형기획사는 언제나 대접 받고, 그러는 사이 중소형기획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복면가왕'이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복면가왕'에서는 이름값도, 배경도 다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공평한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복면가왕'에 출연한 가수들처럼 "계급장 다 떼고 한판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쩌면 복면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동훈 물고기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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