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숫자보다 '신뢰'가 절실한 자본시장
2015-05-11 06:00:00 2015-05-11 06:00:00
‘가짜 백수오’ 논란에 휩싸인 내츄럴엔도텍이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9만원을 넘었던 주가는 계속되는 하한가 행진에 1만원대로 떨어졌다. 며칠 전 만해도 코스닥 시가총액 9위를 기록했던 이 회사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안이한 초기 대응에 이어 뒤늦은 후회를 지켜보는 시장은 싸늘할 뿐이고, 하루 아침에 깡통계좌를 안은 투자자들만 망연자실한 처지가 됐다.
 
14년 전에는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극찬받던 에너지 기업 엔론이 파산했다. 회계부정을 숨긴 채 이익을 부풀리며 몸집을 키웠던 거대 기업이 파산하기까지는 논란이 시작된 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시장을 속여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내츄럴엔도텍 사태는 침체된 자본시장을 살리겠다면서 잇따라 상장 문턱을 낮추고 있는 당국엔 적잖이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견실해 보였던 유망기업도 돌발 악재로 추락하는 판에 낮아진 기준과 눈높이로 평가받아 상장된 회사를 믿고 투자하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금융당국은 올 들어 증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한편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과 투자자들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을 신청한 회사에 대한 기술평가상장 특례를 확대하고 질적 심사요건을 간소화했고, 코스닥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벤처기업이 상장하기 위해 개설된 코넥스 시장은 부진한 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면서 예탁금 요건을 3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거래소는 상장유치 목표까지 설정해 놓고 더 많은 기업을 증시로 유도하고 있다. 올해 거래소는 코스피 20개, 코스닥 100개, 코넥스 50개 등 총 170개 기업의 신규 상장을 목표하고 있다. 이는 작년에 달성한 109개보다 61개 늘어난 숫자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국내 경제에서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투자자는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 기업은 저비용으로 필요자금을 조달하면서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에 현혹돼 억지로 부양시킨 시장은 희망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당국이 상장사 갯수에 연연하지 말고 건강한 기업을 가려내 투명한 시장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군주가 백성을 믿지 못하면 나라와 정치가 바로설 수 없는 것처럼 신뢰받지 못하는 기업으로 채워진 자본시장은 건강해질 수 없다. 건강하지 못한 시장에서 건전한 투자문화를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증권부장 정경진 shiwal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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